19세기 러시아 지적논쟁
- 최초 등록일
- 2014.03.31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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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 러시아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 지적 논쟁은 향후 러시아의 전통과 대외정책 방향성에 관해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목차
1. 슬라브주의(Славянофильство)
2. 서구주의(Западничество)
3. 유라시아주의(Евразийство)
4. 참고문헌
본문내용
러시아의 전통과 대외정책 방향성에 관한 논쟁
니꼴라이 1세(Николай Ⅰ, 1825~55)는 봉건제도의 유지가 자신의 최대 과업이라 생각했다. 제위에 오르며 “혁명은 러시아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난 맹세한다. 내가 살아 숨쉬는 한 혁명은 러시아에 침투하지 못할 것임을” 니꼴라이는 ‘자유사상’과의 투쟁을 위해 황제원 특별 제 3부와 벤껜도르프(Бенкендорф)장군을 대장으로 하는 헌병대를 창설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과하고 서유럽에서는 혁명이 일어났으며, 러시아 전역에서는 농민반란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벤껜도르프는 “농노제는 국가 밑바닥에서 언제든지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화약고와 같다”라고 말을 했다.
<중 략>
옐친 시기의 대통령 고문이었던 스탄케비치(Станкевич)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주의자들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특수한 지정학적 역할을 강조하며 독립국가연합의 강화와 무슬림 세계와 중국등과의 밀접한 관계유지가 장기적으로 보아 전략적 이익에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대륙국가임을 강조함으로써 흔히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띠며, 20세기 초의 지정학자들이 주장하던 심장부 지역론과 연결되면서 제정 러시아의 외교에서 많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입장이다.
이것은 러시아적인 것들에 몰두하던 전통적인 슬라브주의의 국제정치적 입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특별히 소련의 붕괴와 함께 우크라이나 및 벨라루시 등의 독립으로 러시아가 지리적으로 유럽의 핵심에서 더욱 격리됨으로써, 동방을 향하여 러시아의 자원과 잠재력을 재분배하고 관계를 재조정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외교정책에서 제정 러시아 시기의 고전적인 동방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함영준, '슬라브주의, 서구주의 논쟁과 러시아 예술', 슬라브학보, 2002
기연수 역, 『러시아의 역사』, С. Н. 스이로프 저, (서울: 동아일보사, 1998)
이무열 지음, 『러시아사 100장면』, (서울: 가람기획, 1994)
정한구∙문수언 공편, 『러시아 정치의 이해』, (서울: 나남출판,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