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 최초 등록일
- 2014.01.01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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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성종과 세자 융
2. 폐비 윤씨
3. 연산군과 붕당(朋黨)정치
4. 연산군의 패륜과 비정(秕政)
5. 연산군의 재조명
Ⅲ. 결 론
본문내용
정조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연산군은 어머니를 잃었다는 불우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조는 성군으로 추앙받는 왕이 된 반면 연산군은 폐주가 되고 말았다. 왜 그들은 이렇게 판이한 인생길을 걸어갔을까?
정조는 정의로운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섬세한 양육자인 혜경궁 홍씨 품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때문에 비록 정조는 11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억울하게 죽고, 어머니는 왕위에 오른 그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으나 꿋꿋하게 개혁을 추진해 나갈 수 있었다. 반면에 연산군은 건강한 인격자인 폐비 윤 씨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아니라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유년기를 보내야만 했고, 마마보이인 아버지 성종이나 과부였던 대비들은 연산군에게 건강한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또한 끊임없이 살해의 위험을 당했던 연산군은 사람이나,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할 수 없었고 이것이 그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만든 주요한 원인이 됐다.
언제나 원리원칙을 내세우는 신료들은 인간인 왕에게 인간 이상을 요구했지만 왕은 인간이었기에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신료들은 그런 왕을 비난했고, 왕은 그들의 명분 있는 비난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이는 신권이 강한 조선의 왕이라는 자리가 가진 속성이기도 했다. 신료들은 평소에도 “사욕을 버려야 한다. 개인적 즐거움은 뒤로해야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중해야 한다.” 등으로 왕권을 견제했으며, 연산군의 시 짓는 취미를 신료들이 지적하자 “이게 사실은 시가 아니다.” 하는 식으로 변명을 해댔을 정도다. 그러나 아무리 약한 왕권이라고 해도 왕들은 각각의 개성과 그 시대의 성격에 맞추어 조금씩 다른 방법을 썼지만, 정국 주도권을 손에 넣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의지만은 한결 같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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