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한국전쟁시기 1945~1953년
- 최초 등록일
- 2013.12.28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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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45~1959년 사이의 한국영화사를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해방 전기 영화 - ‘광복영화의 등장’
2. 광복영화의 대표영화 최인규의 <자유만세>
3. 한국의 우국지사와 열사의 삶을 영화화한 감독 윤봉춘
4. 조선영화건설본부 결성
5. 조선영화동맹 결성
6. 한국전쟁시기
7. 피난지에서의 영화제작
8. 영화산업의 중흥기 1954~1959
9. 이규환의 <춘향전>(1955)
10. 멜로드라마의 유행
11. 수도영화사와 안양촬영소
12. 충무로의 형성
본문내용
해방 전기는 광복영화의 등장이 두드러지는 시기이다. 영화제작 환경은 매우 열악했지만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감격과 민족의 긍지를 영화로 나타내었다. 광복의 기쁨을 노래하고 새조국 건설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다루거나 한국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애국지사들에 관한 영화가 주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광복영화에는 해방기 시대의 분위기와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해방의 감격과 새조국 건설에 대한 기대와 계몽의식을 담은 영화는 최인규의 <자유만세>(1946), 신경균의 <새로운 맹서>(1947), 전창근의 <해방된 내 고향>(1947), <민족의 성벽>(1947), 이규환의 <민족의 새벽>(1947), 최인규의 <독립전야>(1948) 등이 있고 애국지사나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준 인물들에 관한 영화는 이구영의 <안중근 사기>(1946), 윤봉춘의 <삼일혁명기>(1947), <윤봉길 의사>(1947), <유관순>(1948), 김영순의 <불멸의 밀사>(1947), 유장산의 <패자의 수도>(1947), 안경호의 <민족의 절규>(1948)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광복영화의 대표영화 최인규의 <자유만세>
<자유만세>는 고려영화협회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해방 전 서울을 배경으로 독립운동가와 그를 치료해 주는 간호사, 일본 경찰간부의 정부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감정과 동포애, 독립운동가와 일경 간의 치열한 교전의 긴박감, 독립운동가의 장렬한 죽음과 라스트에서의 감격적인 만세의 함성 등으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최인규는 1939년에 《국경》을 연출해 데뷔한 뒤 일제 강점기 후반에 <사랑의 맹서>(1945), <가미카제의 아들들>(1945) 등 친일 영화를 여럿 연출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한국영화사 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 김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