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 최초 등록일
- 2013.12.26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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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다하우 수용소와 이명박대통령
Ⅱ. 히틀러 그리고 나의 투쟁
Ⅲ. 『나의 투쟁』을 위한 ‘나의 투쟁’
Ⅳ. 선동가 히틀러
Ⅴ. 히틀러,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습니까?
Ⅵ. 다시 현재를 생각하다.
본문내용
다하우 수용소와 이명박대통령 독일 뮌헨 근교에 위치한 다하우 유태인 수용소(KZ-Gedenkstaette Dachau). 히틀러가 총통으로 올라선 뒤, 정치범들을 수용키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수용소이다. 이후, 12년간 유럽각지에서 온 약 20만 명이 이곳에 투옥되었으며 사상 처음으로 생체실험이 시행되기도 했다. 1945년, 미국이 수용소를 해방시킬 때까지, 4만 3천명 이상이 이 수용소에서 사망하였다. 동시에 이곳은 1학년 1학기를 막 끝내고 유럽 배낭여행을 온 철없는 정치학도인 내게 정치의 그릇된 지도자 신념의 무서움을 깨닫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곳에서 먼 나라의, 오래 전의 역사에 불과했던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매립장의 쓰레기 더미같이 넓은 구덩이 안에 수북이 쌓여있는 시체들과 그 시체들 위에서 웃고 있는 독일군의 사진은 내게 두통을 수반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치가 미처 재가공하지 못하고 남겨 놓은 유태인 사망자들의 머리카락 뭉치와 금니는 전시장 한켠의 벽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소수의 연쇄살인마가 아닌, 국가 전체 구성원이 이렇게 단합해서 엄청난 유린을 자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분노했다. 한 정치지도자의 그릇된 신념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때의 충격이 다시 생각난 건 얼마 전이었다. 즐겨보던 한 주간지에 ‘파시즘의 전주곡’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과 히틀러의 사진이 나란히 표지모델로 실렸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정부와 무기력한 국민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 등은 히틀러의 나치 파시즘의 시작과 매우 닮아 보인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