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발해사 - 高麗에서 독립운동기까지의 渤海史인식
- 최초 등록일
- 2003.05.18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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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渤海史인식의 전제
2. 고려시대의 발해사 인식
3. 朝鮮時代의 渤海史 인식)
본문내용
한국사의 전개과정에서 각 시대의 渤海觀은 渤海國을 자국사로 인식하고 있었는가의 여부와 발해의 종족적 계통을 高句麗로 인식하고 있었는가의 여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문제는 서로 동일한 문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다른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발해를 자국사로 인식하면서도 발해의 종족적 계통에 있어서는 고구려와 다른 '靺鞨'로 보려는 기록들이 병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발해의 종족계통을 보여주는 중국측의 기록들이 각각 그 내용상의 혼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발해의 건국자인 大祚榮의 출신을 언급하면서 발해의 멸망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편찬된 {舊唐書}(後晋, 945)는 발해를 '高句麗 別種'으로 서술하고 있었는가 하면, 이보다 115년 늦게 나온 {新唐書}(宋, 1060)는 고구려와 다른 듯한 '속말 말갈인으로 고구려에 부속된 자'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이 결국 후세인들로 하여금 발해를 고구려인들이 세운 국가로 보기도 하고 마치 고구려인과 계통을 달리하는 말갈인들이 세운 국가로 보기도 한 원인이 되었으며, 한국사에서 발해의 자국사 논쟁이 벌어지게 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대조영의 본래 모습은 '고구려의 속말(송화강) 지역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발해사 인식을 살핌에 있어 또 하나 주목할 수 있는 사실은 발해에 대한 인식이 시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발해에 대한 인식이 꼭 '말갈'의 문제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의 반증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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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삼국사 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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