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론
- 최초 등록일
- 2013.12.09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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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생애와 활동
2. 작품경향과 변모 과정
3. 작가의 시론
본문내용
1. 생애와 활동
김광림은 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아버지 김창응과 어머니 김윤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광림(光林)’은 필명이고 본명은 ‘충남(忠男)’이다. 아버지 김창응은 대서업을 했지만 문학을 좋아해서 많은 문학서를 구입해 읽었으며 김광림은 부친의 책을 읽으며 문학에 관심을 키워가게 되었다. 송도중학 3학년 때 해방을 맞아 고향의 원산중학으로 옮겨 중학을 마친 후 평양종합대학(현 김일성대학) 역사 문학부 외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사회주의적 획일성을 강요하는 교육체제에 환멸을 느껴 입학 한 학기 만에 자퇴하고 말았다. 김광림이 문학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지니게 된 것은 구상, 이중섭 등이 관여하던 동인지 <응향(凝香)>을 통해서였다. 구상, 이중섭 등을 통해 시에 대한 관심을 지니게 되었고 습작도 하게 되었다. 1947년 북조선 예술가 동맹에 의해 ‘응향사건’이 터지고 시적 자유가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면서 북한 사회에 대한 환멸은 더욱 깊어졌다. 1948년 단신 월남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중 략>
둘째로 그는 우리시의 모더니즘을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시의 모더니즘은 30년대와 50년대의 모더니즘으로 나뉘어진다. 30년대의 모더니즘은, 그에 의하면 ‘세기말적인 감상적 로맨티시즘과 당시의 편내용주의의 경향에 대한 반기’로 요약된다. 또한 50년대의 모더니즘을 그는 ‘해방 전후의 시단을 풍미하고 있던 풍월영탄조의 리리시즘을 전쟁이라는 절박한 상황 아래서 반발하고 나선 것’으로 정의한다. 김광림이 이들의 운동을 비판하는 이유는 이들의 시가 보여주는 한계 때문이다. 그 한계는, 30년대 모더니즘의 경우 ‘전달성이 희박해지자 말초감각을 자극시키는 언어의 연금에 사로잡힌 점’, 50년대 모더니즘의 경우에는 ‘시대감각에 민감하던 나머지 사상성에 치중한 점’으로 나타난다
참고 자료
김광림의 시연구(2003년), 이건청(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20세기 한국시인론(2005년), 오세영, 도서출판 월인
한국 전후 문제시인 연구 04(2005년), 김학동 외 9인, 예림기획
김광림 시세계(2006년), 김광림, 푸른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