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제국의 성립과 멸망
- 최초 등록일
- 2003.04.27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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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진의 발전♣
1.개관
2.춘추시대
3.전국시대
4.통일
시황제의 업적
♣ 유방과 항우의 등장 ♣
한 [漢] (BC 202∼AD 220)
진(秦) 이어지는 중국의 통일왕조.
♣한의 발전♣
1.개관
2.정치
3.사회경제
4.문화
5.도예
본문내용
♣진의 발전♣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 국가를 이룩한 진의 시황제는 법가를 이념으로 채택하여 국력을 키운 뒤, 동방의 6국을 차례로 정복하여 , 500년의 싸움을 끝내고 통일하였다. 도읍을 함양으로 하고 , 스스로 시황제라 칭하였다. 전국을 군, 현으로 나누고 여기에 황제가 임명한 관리를 파견하여 통치하는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 집권적 전제 정치를 확립함으로써, 봉건제를 완전히 폐지하였다. 아울러 승상 이사에게 명하여 도량형, 문자, 화폐, 수레의 폭을 통일하는 등 모든 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정치 비판을 봉쇄하여 분서 갱유 사건을 일으켜 물의를 빗기도 하였다. 밖으로는 흉노를 토벌하고 , 만리 장성을 축조하였다. 장군 몽염에게 명하여 흉노를 토벌하고 만리장성의 대공사를 감독토록 하였다. 시황제는 자기의 정책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을 철저히 단속하기 위하여 역사상 유례없는 이른바 분서갱유를 단행하였고, 아방궁의 건설과 여산릉의 공사 등으로 3백만명의 무상 노동 동원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정을 조달하기 위하여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과중한 조세 부담과, 가혹한 법과 형벌로 온 천하는 마치 감옥과 같았다.
진왕조의 지주 정권과 농민간의 모순은 시황제가 죽은 다음해인 B.C. 209년에 마침내 진승(陳勝). 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반란을 신호로하여 각지에서는 진나라 타도를 외치는 반란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고 유방과 항우도 이때에 봉기하여 여러 제후들과 힘을 합쳐 진나라 타도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는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다투게 된다. 유방의 진영에는 소하, 장량, 한신 등의 명참모. 명장이 있어 유방을 잘 보좌하였고, 항우의 진영에는 범증이 자주계책을 진언하였으나 항우는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