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중간고사(2~6강)
- 최초 등록일
- 2013.11.06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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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제 했던 자료입니다 ^^ A+받았어
목차
1. 2강 북한 혁명의 빛 과 그림자
2. 3강. 한국전쟁의 기원과 형성
3. 4강. 한국전쟁의 전개과정과 북한
4. 5강. 전쟁 이후의 북한 사회
5. 6강. 1960년대 북한의 유일사상체계와 자주노선
본문내용
2강 북한 혁명의 빛 과 그림자
1945년 8월8일 대일선전 포고후, 8월9일 만주·한반도에 대한 진공작전을 개시했고 8월 말까지 38선 이북 사실상 완전히 장악했다.(미군은 오히려 참전하기를 원치 않음-원자탄 때문)
소련은 해방과 더불어 북한 각지에 형성된 건국준비 위원회(해방 직후 활동, 여운형 주도아래 145개의 건준지부 탄생, 좌우통합적·지역성·자체성)나 인민위원회를 간접적으로 지원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그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그들은 미래의 한국정부가 친소나 최소한 중립적인 정부일 것을 원했고, 그들을 도와주며 간접적으로 지지를 얻으려 하였다.
김일성과 항일빨치산 세력들은 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민족 통일전선을 추구했다. 특히 대표적인 민족통일전선의 대상은 조만식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이 학교건물을 접수·사용하려한 신의주사건으로 인해 우익 민족주의자들과 기독교 세력이 노골적인 반소로 돌아서게 되었다. 원래 모스크바 삼상회담은 전후 한국문제 처리에 대한 회의였는데, 여기서 미소공위(미·영·국민당·중vs소)가 설치 되었다. 여기서 소련은 한국을 먼저 민주주의적 임시정부 수립을 제안했고, 미국이 수정하여 합의하였다. 사실 임시정부도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건준위가 지방을 잘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있어서 최대 5년의 신탁 통치와 같은 결정사항은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동아일보의 왜곡보도(소련은 신탁통치 찬성, 미국은 반대)가 퍼지면서 순식간에 남한은 반소·반탁운동이 벌어졌고 공산당은 반민족 단체로 낙인찍혔다(그들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 찬성했기 때문). 또한 여기서 조만식의 반탁과 좌우연립이 붕괴되었다. (이시기에 백의사의 주도로 1946년 3·1절 기념식장에서 김일성 암살 미수사건이 일어났다.)
북한의 개혁은 민주기지노선을 근거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에서 민주개혁을 통해 혁명역량을 강화하여, 그것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민주개혁은 이것을 실시하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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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