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의 척사위정활동과 구국활동
- 최초 등록일
- 2003.04.04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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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최익현의 생애
2.척사위정운동의 사상적 근거로서의 주리철학
3.소에 나타난 척사위정사상
4.을사보호조약과 의병활동
본문내용
○최익현의 생애
최익현(勉庵 崔益鉉: 1883∼1906)은 순조33년 12월 5일 경기도 포천군 가채리에서 최대(崔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서 광무10년 대마도에 유배되어 단식으로 운명하였다.
최익현은 14세때 화서 이항로의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하였는데 그의 척사위정사상은 그의 스승 이항로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그는 화서의 문하에 들어가 화서의 교화를 받으면서 동문들의 우국충정의 분위기에 젖어 장차 큰 인물로 자랄 수 있었던 교육을 받았다.
그는 철종 6년(1855) 봄 23세 때 명경과(明經科)에 상제(上第)로 급제하여 6월에 권지승문원(權知承文院) 부정자(副正字)에 임명되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으나 도백(道伯) 유장환의 그릇된 정사에 반기를 들고 인수(印綬)를 버리고 떠날 때 신창 백성들이 길을 막으며 머물기를 원했으나 밤을 타서 그들을 피해 떠났다고 한다. 그때 그는 생활이 곤란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를 거느리기에는 어려운 때였는데도 이처럼 거취를 분명히 한 것은 그의 사림정신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최익현은 그 후 여러 직을 거쳐 36세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에 임명되어 대원군의 폭정을 최초로 비난하여 대원군이 그를 탄핵하는 소를 올리게 하여 사직케 하였다.
참고 자료
권태억, 류승렬, 정연태, 도면회, 전우용, ꡔ근대한국탐사ꡕ, 역사비평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