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개화운동과 위정척사
- 최초 등록일
- 2003.03.29
- 최종 저작일
- 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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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개화운동 ≫
▣ 개화(開化)사상의 형성
▣ 개화정책의 추진
▣ 개화운동의 발전
≪ 위정척사 ≫
▣ 위정척사론의 대두
▣ 위정척사 운동의 전개
▣ 위정척사운동의 확대
본문내용
▣ 개화(開化)사상의 형성
1. 개화(開化)
ㆍ 뜻 :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백성을 교화 한다
ㆍ 유래 : 187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문명개화’라는 말이 1876년 개항 후 조선에 들어와 조선에서는 188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
⇒ 이 시기의 개화는 ‘문명화’ ‘서양화’ 또는 이들을 통한 ‘부국강병’을 의미하기도 함
2. 초기 개화사상가들
ㆍ 오경석 : 실학자 김정희의 제자. 한국 개화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한 최초의 선구자. 중인 출신의 역관으로 사신을 수행하여 수차례 청에 왕래하면서 직접 서양문물을 접하고 이를 소개하는 서적을 구입하여 옴. 안으로는 박가의 실학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밖으로는 자신이 구입 하여온 신서들을 연구하여, 1853∼1859년의 기간에 처음으로 한국의 개화사상을 형성
ㆍ 박규수 :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로서 북학론의 영향을 받았으며 두 차례 청에 사신으로 다녀온 이후 서양의 문물의 우월성과 개항의 필요성을 깨닫고 문호개방을 주장. 서양열강에게 침략 당하여 붕괴되어 가는 중국의 실상을 관찰하고 또한 민족적 위기를 의식하여 귀국할 때에≪海國圖志(해국도지)≫ ≪瀛環志略 (영환지략)≫등 신서를 구입 · 연구하여 1860년대에 개화사상 형성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