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남희
- 최초 등록일
- 2013.09.09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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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송원남희 발전 개황
2. 송원희문과『장협장원』
3. 고명과『비파기』
본문내용
1. 송원남희 발전 개황
남희는 북송 말에서 명 중기에 이르기까지 “온주잡극”에서 연원한 성질이 같은 각 지방의 모든 민간희곡예술에 대한 총칭이다. 송 잡극, 금 원본, 원 잡극, 명 전기와 마찬가지로 남희도 또한 특정한 역사적 개념이다. 남희의 발전 역사상 이전에는 주로 송원 두 시기에 존재했었다고 여겼기에, 일반적으로 희곡사에서 말할 때 통상 “송원남희”라고 칭한다. 남희는 이전 시기 사람들의 저술에서는 대개 “희문”이라고 칭했다. 원대 흥기한 북곡잡극과 구별하기 위해 어떤 이는 “남곡희문”이라 칭하기도 한다. 남곡희문은 후에 “남희문”, “남곡”, “남희”로 간칭되기도 하였다. 남희는 최초로 절강 온주(일명 영가)에서 기원하였고, 원대 이전에 일찍이 모든 희극형식을 “잡극”이라고 통칭했기에 초기 남희는 타지 사람들에 의해 “온주잡극” 혹은 “영가잡극”이라고 불려졌다. 온주 지역(강절 일대의 많은 곳)에서는 구희곡이라고 칭하기도 하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희문”이라는 명칭을 연용하기도 한다. 본문에서는 개념을 통일시키는 관점에서 劇種은 “남희”라고 통칭하고, 작품은 “희문”이라고 칭한다. 전자는, 예컨대 “남희 발전”, “남희 예술”과 같은 경우이고, 후자는 “희문 존목”, “『趙貞女』희문”이 그러한 경우이다.
<중 략>
쌀겨의 삼키기 어려움과 절구에 빻이는 것에서 자신이 생활하면서 온갖 고난을 겪는 신세를 생각해내고 쌀겨와 쌀의 천함과 귀함과 두 곳으로 날리는 상황에서 자신과 채백개의 이별한 후의 다른 운명을 생각해냈다. 연상력이 풍부하고 유추가 타당하니 사람들이 신들린 문장이라고까지 했다.
『비파기』가 탄생한 후에 극을 평한 이들은 모범작으로 보고 “구를 조탁하지 않은 솜씨로 내용을 아름답게 하고 인정을 잘 살피고 상세함을 다했다. 사물의 형태를 묘사함에 마치 살아있는 듯이 했다. 문답하는 사이에 완전히 꾸민 점이 보이지 않는다.”(왕세정『예언치어』) 곡을 짓는 이들은 “곡의 으뜸”으로 받들었는데『비파기』를 칭해 “문사의 뜻이 고상하고 음운이 절묘하여 모든 사의 강령이다. 멋대로 대충대충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마다 구마다 노래의 이치에 확실히 들어맞으니 바야흐로 국공이다.”(위량보『곡률』).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