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 외세 침략과 근대 민족국가 수립의 실패
- 최초 등록일
- 2003.01.15
- 최종 저작일
-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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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 장 근대 민족국가 수립의 실패
제 2 장 반침략 민족운동의 전개
제 3 장 개항과 민족자본 형성의 실패
본문내용
제 1 장 근대 민족국가 수립의 실패
18세기 후반기에 북학파의 박제가와 같은 진보적 사상가들의 해외통상론은 조선왕조의 쇄국주의를 극복하고 문호개방론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선진적 주장이었으나 19세기의 세도정권 시기로 들어서면서 보수정치세력은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쇄국주의를 강행하여 자율적 문호개방을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서양 여러 나라와 일본의 문호개방 요구에 강력히 반대하며 쇄국주의를 고수하던 대원군정권이 무너지고 민씨 정권에 와서야 문호가 개방되었는데 진보적 정권도 아니며 또 주체적 준비도 갖추지 않았으면서 민씨정권이 문호를 개방한 이유는 첫째, 민씨정권의 권력유지를 위해 우선 외세와의 분쟁을 피하고 그것과 타협하지 않을수 없었고 둘째, 류우뀨우를 복속시키고 타이완을 침공한후 그 여세로 조선을 침략할 준비를 갖추고 있던 일본의 조선에 대한 적극적인 문호개방정책때문이었다. 신미양요에서 실패한 후에도 조선의 문호개방을 계속 기도하고 있던 미국에게 선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둘러 운양호사건을 도발한 일본은 우선 조선 진출에 대한 청나라의 방해를 막기 위해 조선과 청나라의 종속관계를 이유로 운양호사건의 책임을 먼저 청나라에 물었고 유럽 여러 나라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던 청나라는 문제가 확대될 것을 꺼려 민씨정권에 일본과 조약을 맺도록 권유했고 그리하여 조선이 외국과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며 타율적으로 맺어진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