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자료를 모으던 중, 그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전 로마의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나라를 네 개로 4분할했기 때문이었음을 발견했다. 그렇기에 먼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짤막한 이야기를 다룸을 통해,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에 대한 배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두 번째로, 콘스탄티누스의 업적들과 그의 일생에 있어서의 중요한 점들, 특히 그의 원정과 종교, 그리고 국가 운영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I. 비잔티움의 발단을 만들어 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II. 콘스탄티누스 대제
ⅰ) 로마의 황제가 되기까지의 전개
ⅱ) 황제의 원정
ⅲ) 세례와 죽음
ⅳ) 콘스탄티누스와 기독교
ⅴ) 콘스탄티누스의 업적
3. 결 론
본문내용
본 론
I. 비잔티움의 발단을 만들어 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일리리쿰(발칸반도) 평민 출신의 군인이었으나 284년 황실의 친위대장으로써 동로마지역을 장악하였고, 일리리쿰 전투에서 자신이 모시던 황제의 동생을 살해하고 황제가 되었다. 또 그는 2명의 정제 및 2명의 부제에 의하여 분할통치하는 사두 정치체제를 시작하여 훗날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게 해 준 장본인이며, 또 그는 수시로 변하는 화폐가치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에 매우 탁월한 세금납부방법을 발명했는데, 책에 따르면 그는, “카푸트caput(머리)와 유굼jugum(멍에)를 발명함으로써 이 장애물을 극복했다.……전자는 곡물로 지불할 수 있는 세대의 능력을 가늠하고, 후자는 현물이나 경화로 다른 세금들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했다.” 라고 설명해 주고 있다.
몇 년이 지나자, 이미 분할 된 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는 광대한 영토를 혼자서 지키기에는 너무나 벅차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도박과도 같은 결정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권력을 더 세분하여 자신과 막시미아누스의 휘하의 각각 한 명씨의 부제(Caesar)를 두기로 했다(자신과 막시미아누스는 정제(Augustus) 라고 불렀다).” 부제들은 가장 위협받는 두 국경들중 하나씩 맡아 다스리고 보호를 해야 했다. 막시미아누스의 카이사르로써 콘스탄티누스의 아버지인 콘스탄티우스가 라인 강의 방어를 맡게 됨으로써,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두 번째 제국 분할은 콘스탄티누스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가장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개혁들을 주도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298년, 페르시아의 수도인 크테시폰을 점령하며 자신의 치세의 절정기를 맞게 된다. 303년경, 그는 자신의 부제인 갈레리우스의 간청으로 별다른 이유없이 기독교를 탄압하여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수 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투옥하여 고문하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명을 내렸다. 그는 이외에도 다른 여러 업적들을 남겼고, 로마 황제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진 퇴위를 함으로써 황제로서의 치세의 막을 내린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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