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신석기시대
- 최초 등록일
- 2013.05.25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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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중국의 신석기시대
ⅰ)농경의 출현
ⅱ)취락의 구조
ⅲ)경제활동
ⅳ)계급의 분화
Ⅱ.초기 신석기시대
ⅰ)초기 신석기 시대의 특징
ⅱ)앙소 문화(仰所文化)
ⅲ)배리강 문화(裵李崗文化)
ⅳ)하모도 문화(河姆渡文化)
Ⅲ.중·후기 신석기시대
ⅰ)중기 신석기 시대의 특징
ⅱ)용산문화(龍山文化)
ⅲ)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ⅳ)양저문화(良渚文化)
Ⅳ.신석기문화의 전통과 특징
Ⅴ.참고문헌
본문내용
Ⅰ.중국의 신석기 시대
대략 1만 년 전에 인류는 신석기시대로 들어섰다. 농업과 목축업의 등장, 마제석기, 도기, 방직 등의 출현은 인류가 생산경제 단계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그 이전에 인류는 단지 채집을 통해 먹을 것을 얻었지만, 신석기 시대의 인류는 먹을 것을 생산하게 되었다. 토지의 경작과 가축의 사육은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는 음식물의 공급원이었고, 이로 인해 잉여가 생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생태환경은 인구를 빠른 속도로 증가 시켰고, 생활을 비교적 안정되게 하였으며, 각종 사회 제도를 형성 시켰다. 그것은 거대한 사회 경제적 혁명 이였다.
‘음식물의 채집’에서 ‘음식물의 생산’으로 발전한 것은 ‘음식물 생산의 혁명’으로 일컫어 진다. 이후의 공업혁명과 비교하여 농업혁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중 략>
수백 명에서 천 명 정도가 취락을 구성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기는 대략B.C.5000년경으로 채소와 함께 식량용 밀, 종자용 조가 출토되었고, 돼지와 개를 사육한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동북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강채(姜寨)유적은 일부를 뺴고는 취락 전체의 구조가 밝혀져 앙소 문화시대의 취락 형태를 잘 보여준다.
B.C.45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취락은 주위가 방어요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고 도랑의 안쪽은 목책이 둘러쳐져 있다.주거지는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해 다섯 군데가 무리를 지어 형성되어 있다. 각 무리는 대형 주거지와 중형 주거지가 하나씩 발견되었고 소형 주거지가 약 20호 정도 발견되어 전체적으로 100호 정도가 된다.
300-400명 정도가 모여 살았던 이 유적의 신석기인들은 원형과 방형(네모반듯한 모양)의 반지하식 가옥에서 거주했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별개의 집단이 만들어져 있었고, 부장품은 청소년과 유아를 제외하면 거의 차이가 없어 이때까지는 계급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취락의 운영은 씨족조직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씨족의 장로들에 의해 운영되었다고 보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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