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사상과 생애
- 최초 등록일
- 2013.05.09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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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독일의 경제학자·정치학자·철학자(1818~1883).
독일 관념론, 공상적 사회주의 및 고전 경제학을 비판하여 과학적 사회주의를 창시하였다. 헤겔 좌파 사상의 영향을 받고 급진적인 부르주아 반정부 기관지 《라인 신문》의 주필로 있다가, 신문의 폐간으로 파리로 망명하여 사적 유물론 사상을 확립하고 1848년에는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집필하였다. 1849년 이후에는 런던에서 빈곤과 싸우며 경제학 연구에 전념하고 《자본론》 저술에 몰두하였다.
이는 역사의 유물 변증법적 해석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역할을 인식하고 해방을 추구하여 계급투쟁의 이론을 수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제 공산주의 조직인 ‘인터내셔널’을 만들었으며, 저서에 《신성 가족》, 《경제학 비판》, 《프랑스의 내란》, 《철학의 빈곤》, 《자본론》, 《고타 강령 비판》 등이 있다.
마르크스에 대하여.
1883년 3월 17일 런던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서 열린 카를 마르크스의 장례식에는 불과 십여 명의 조객이 참석하였다. 그러나 백년도 되지 않아 세계인구의 절반이 마르크스주의를 신조로 내세우는 정부의 통치를 받게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놀랍게도 20세기 후반의 세계 인구 중 적어도 절반 인구에게 세계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신념 체계를 제공해 주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마르크스자신의 활동이 당대에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1)그는 대중 앞에서 연설한 적이 거의 없으며 연설했을 때에도 그다지 매력적인 웅변술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적어도 20대까지의 청년마르크스는 오로지 그가 구상했던 광범위한 체계의 이론을 세밀하게 다듬는 데 몰두했으며, 따라서 그는 일차적으로는 사상가였다.
대중들의 지위와 미래가 그의 이론적 관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는 거의 대중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또한 그의 많은 저서들도 그가 살던 시대에는 폭넓게 읽혀지지 않았다. 더욱이 마르크스 자신이 전적으로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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