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사회와 기독교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13.04.28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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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세 유럽의 형성 초기를 살펴보면, 800년에 카알 대왕이 로마 황제에 즉위하고 고대 로마 제국부터 이어졌던 통일 기독교 제국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프랑크 왕국을 건설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카알 대제는 그의 재위 기간동안 이교 신앙을 믿었던 게르만족을 통벌했다. 774년에 롬바르드 왕국을 멸망시켜 200년 동안 로마 교황청의 독립을 위협했던 세력을 제거했고, 793~794년에 동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아바르족을 정복하여 도나우 지방에 기독교를 부활시켰다. 또한 32년동안 작센인들의 저항을 이겨내면서까지 정복했던 것은 이교 신앙의 마지막 잔재까지 없애버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프랑크 왕국의 국경을 엘베 강과 지중해와 도나우 강 하류까지 확장해 서유럽 기독교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합시켰다.
이처럼 오랫동안 정복원정을 했던 카알 대왕은 반평생을 말 위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그는 정복 이후에도 그리스인들이 엘레모시나(eleemosyna)라고 부르는 자선의 형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나라를 포함해 자신의 지배력이 미치는 시리아, 이집트, 아프리카,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에서도 자선을 베풀었다. 이를 통해 그는 바다 건너에 있는 왕들과 우호관계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알 대제는 여러 국가들을 살피러 돌아다니기 위해 거의 실제 왕좌는 여행용 의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화려한 것보다는 편한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일반인 복장과 다를게 거의 없는 프랑크족 의상을 입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학자들과의 대화를 즐겼으며 학자들을 매우 존경하여 그들에게 높은 지위를 부여했다.
카알 대왕과 아헨도시는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인데, 그 이유는 신성로마제국이 아헨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헨에는 아헨 대성당과 카알 대제의 무덤도 있는데 아헨 대성당의 건축 양식은 신성 로마 건축의 시작을 보여주기도 한다.
참고 자료
Einhard, 『샤를마뉴의 생애』, 지만지, 2008.
Horst Fuhrmann, 『중세로의 초대』, 이마고, 2003.
Hans Küng, 『가톨릭 교회』, 을유문화사, 2003.
Christopher Dawson, 『유럽의 형성』, 한길사, 2011.
심재윤, 『서양중세사의 이해』, 선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