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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4.12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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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집권정책
Ⅲ.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외교정책
Ⅳ.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경제정책
Ⅴ.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정치
Ⅵ.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리더십(리더쉽)
본문내용
1885년에서 1886년 사이에는 자유당과 보수당이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잡았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아일랜드 자치법안 문제가 있었다. 토지법안 문제로 홍역을 치른 글래드스턴은 1881년 이 법안의 상원통과와 함께 한시름을 들게 되었지만, 얼마 후 불거져 나온 아일랜드 자치법안 문제는 그를 새로운 정치적 곤경에 빠트렸다. 사실 독립을 원하는 그들의 요구는 도덕성을 지향하는 그의 정책에 부합되는 것이므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경제불황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아일랜드가 독립한다면, 농업불황이 심화될 것이고 동시에 자신의 정권유지에도 치명적 손상을 입게 될 것이므로 그로서는 이 법안을 추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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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애틀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애틀리가 전후의 힘든 재정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한데에는 잠정적으로 재정부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재정부분의 준비란 전쟁 중 미국으로부터 60억 달러의 무이자 대부를 받기로 잠정적으로 합의했던 것으로서, 실제로는 44억 달러를 빌리게 되었고, 그 중 6억 5천만 달러에 대해서는 2%의 이자를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조약의 내용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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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이후 글래드스턴은 대중적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디즈레일리라는 악의 나무를 베는, 혹은 독을 뿜는 나무(Upas Tree)를 베는 ‘나무꾼’(Woodsman)과 ‘고지대 전사’(Highland Warrior)라는 이미지로 채색되어 숭배되었다. 악을 무찌르는 존재에 관한 이 이미지들은 영국 대중들의 뇌리 속에 오래 전부터 각인된 것이었다. 언론은 글래드스턴이 향리인 하워든(Hawarden)에서 거대한 나무를 베는 현장을 보도하였고, ‘순례자들’인 방문객들은 나무 부스러기를 기념물로 가져갔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지 멜빵을 제치고서, 맨손으로’ 도끼를 잡고서 나무를 베는 그의 모습은 노동계급에게 바로 자신들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참고 자료
김기순(2009), 글래드스턴과 다윈주의, 한국서양사학회
김기순(2010), 글래드스턴과 아일랜드 토지문제 : 토지법안(1886)의 성격, 영국사학회
김기순(1999), 글래드스턴의 리더십, 영국사학회
김현수(2001), 영국정책의 딜레마 :글래드스턴 2차 내각과 애틀리 내각의 집권정책 비교연구, 영국사학회
안덕광(2008), 글래드스턴의 제국정책 연구 : 1882년 이집트 점령을 중심으로, 영남대학교
최현미(2004), 콥던의 재정 개혁 방안과 글래드스턴의 재정 개혁, 영국사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