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박헌영
- 최초 등록일
- 2002.12.13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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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말 과제로 한 내용입니다.
박헌영 한 인물에 대해서 그의 활동 시작부터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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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상해부두를 떠난 태고양행 소속의 연안 여객선이 압록강 맞은편의 중국령 안동에 도착했을 때, 줄지어 하산하는 승객들 사이에는 박헌영과 김단야 그리고 임원근이 있었다. 그들은 압록강을 건너 국경을 넘을려고 했으나 체포되고 말았다. 그들은 경찰에게 추궁을 당하게 되었고, 결국 박헌영도 1921년 7월부터 재상해 '사회주의연구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사상을 연구했다고 진술했다. 자백한 바에 따르면, 입국 목적은 "조선 각자에서 사회주의 선전을 하는 것"이었다. 그 후 세 사람은 1922년 5월 30일에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각각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은 경찰의 가혹한 심문 속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와 사명, 입국 목적을 은폐해냈다. 세 사람은 평범한 일개 당원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은 3·1운동 이후 무서운 기세로 확장하고 있던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최고급 간부였다. 세 사람의 직위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위원이었다. 고려공산청년회는 코민테른과 더불어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참모부 역할을 하던 국제공산청년 동맹 한국지부로서 1921년 8월 중국 북경에서 비밀리에 결성된 바 있다. 박헌영은 창립 당초부터 그 중앙위원에 선임되었으며, 나아가 최고위 직책인 책임비서를 맡고 있었다. 그의 나이 22세 때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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