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시인 김용택][시인 백석][시인 김영랑][시인 서정주][시인 이용악]시어와 시인 김용택, 시어와 시인 백석, 시어와 시인 김영랑, 시어와 시인 서정주,시어와 시인 이용악
- 최초 등록일
- 2013.02.23
- 최종 저작일
- 2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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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어][시인 김용택][시인 백석][시인 김영랑][시인 서정주][시인 이용악]시어와 시인 김용택, 시어와 시인 백석, 시어와 시인 김영랑, 시어와 시인 서정주,시어와 시인 이용악
목차
Ⅰ. 개요
Ⅱ. 시어와 시인 김용택
Ⅲ. 시어와 시인 백석
Ⅳ. 시어와 시인 김영랑
1. 바래다
2. 골불은
3. 조매로운
4. 제운밤, 제운맘
Ⅴ. 시어와 시인 서정주
Ⅵ. 시어와 시인 이용악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한글이 민족 생활의 중심으로 육박하게 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이른바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기인한 민족 문화 말살 책동으로 인해서 모어가 다시 생존 차원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일제의 창씨개명과 조선어 사용 금지 조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국어는 다행히도 선각적인 국어학자와 문인들, 특히 시인들의 노력에 의하여 생존적인 차원에서 생활어의 차원으로, 다시 예술어의 차원으로 상승해 가기 시작하였다. 많은 시인들이 민족어로서 우리말, 우리글을 갈고 닦음으로써 우리말, 우리글의 문학적 훈련이 본격화되었고, 예술어로서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한글은 8?15광복과 더불어 민족어를 적는 공식적 표기 수단이 되었고, 민족의 역사 및 생활사 그리고 정신사 및 예술사와 운명을 같이하게 되었다. 광복이란 민족 주권의 광복이면서 동시에 민족어의 광복이었다. 이에 현대시사에서 우리말, 우리글의 문학적 훈련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시어의 발전 과정으로서 민족어 완성을 향한 노력의 길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중 략>
시어는 陳腐한 일상적인 언어로부터 일탈하여 보다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거나 율격이나 리듬감을 살리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이용악은 이러한 시어의 모색 과정에서 방언을 선택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불술기’, ‘한뉘’, ‘죄롭다’ 따위가 그러한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한 사실은 모더니즘적인 색채가 보이거나 또는 해방 이후 이념적인 성향을 드리운 시에서도 함경도 방언이 여전히 발견된다는 점과 그의 시어에서는 함북 방언 외에 평안도나 남부 방언(경상?전라)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가령, ‘-으시이소’, ‘-으라요’, ‘-자요’ 따위와 같은 종결어미나 ‘보듬-’, ‘가시내’ 따위와 같은 어사들이 그것이다. 이는 그가 방언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을 가졌으며 방언을 시어화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생각된다.
참고 자료
강희숙, 김용택 시어의 방언 문법론, 우리말글학회, 2003
김용희, 서정주 시의 시어와 이데올로기, 한국시학회, 2005
조창규, 소월과 영랑 시어의 계량언어학적 고찰, 배달말학회, 2002
조창규 외 1명, 영랑 시어의 계량적 고찰, 대한언어학회, 2001
최윤형, 이용악 시 연구시어 분석을 중심으로, 성심어문학회, 1993
한예찬, 백석 시의 시어 연구,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