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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2.21
- 최종 저작일
- 2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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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한민족(우리민족, 한국민족)의 역사
Ⅲ. 한민족(우리민족, 한국민족)의 특성
Ⅳ. 한민족(우리민족, 한국민족)의 정체성
Ⅴ. 한민족(우리민족, 한국민족)의 문화
Ⅵ. 한민족(우리민족, 한국민족)의 생활
Ⅶ. 한민족(우리민족, 한국민족)의 이주
본문내용
Ⅰ. 개요
강제 이주 이전 중앙아시아에 얼마만큼의 한인이 어느 경로를 거쳐서 정착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아직 잘 밝혀져 있지 않다. 한인들이 극동방면으로 진출한 후 서진을 계속하여 유럽 러시아에 정착하게 된 만큼 다시 이와 유사하게 1910-1920년대 사이에 한인들이 러시아 전역에 걸쳐 거주하게 되었고 이 무렵에 아마 극소수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 쪽에도 거주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된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통계로는 1926년에 조사된 것이며 이 조사에서 현 카자흐공화국의 아크모린스크, 세미팔라탄스크, 시르다리아에 모두 42명의 한인들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지역에도 타슈켄트주변, 부하라, 수르한다리아 주변에 모두 36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의 한인들이 대개 그러하였듯 이 지역의 한인들도 아마 노동에 종사하거나 농업부문의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중앙아시아는 한인들이 다수 거주하던 극동지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인들과 별다른 연고가 있는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1920년대까지는 그야말로 극소수의 한인들만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인들의 이민 가능성이 검토된 것은 1930년의 일이다. 1930년에 소련은 블라디보스톡 근처의 1625명의 한인들을 이주시키는데 이 때 1455명은 하바로프스크 근처로 170명은 카자흐스탄으로 보내졌다. 이 중에 431명에게는 강제적인 이주조치가 실시되었다고 하니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는 이 때가 시발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시 실험적으로 한인들이 중앙아시아에 이주되어 영농의 가능성이 검토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정치적인 범죄자로서 이주된 것인지, 혹은 그야말로 실험적으로 집단이주를 염두에 두고 실행된 일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1928년부터 극동에서의 한인의 강제이주가 실행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강제이주의 후보지로서 물색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가질 수가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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