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인쇄 완료
- 최초 등록일
- 2013.02.20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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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성립
1. 건국
2. 종족구성
3. 발해국의 성격
4. 발해사에 대한 논란 이유
5. 발해사 인식
Ⅱ 발해의 발전
1. 발해 왕별 변천
2. 중앙제도
3. 지방제도
4. 군사조직
5. 전반적 특징
6. 사회․경제
7. 대외관계
Ⅳ 문화
1. 성격
2. 내용
본문내용
Ⅰ 성립
1. 건국
① 고구려 부흥 운동의 결과 건국(진국, 698)
cf) 소고구려국 : 당(측천무후시기)은 고구려 멸망 후 요동지방에서 항거하던 고구려유민들을 달래기 위해 당에 포로로 잡혀갔던 보장왕과 그 후손들을 대대로 요동도독으로 임명. 이것이 소고구려국! 즉 당의 지방제후로 어느 정도 자치를 허용하면서 동방 사회 이간 → but 실패, 요동에서 소고구려국이 단결하고 있을 때 발해건국
② 고구려 장수 걸걸중상, 말갈 장수 걸사비우. 둘다 죽고 대조영이 걸사비우 휘하의 말갈인 까지 규합하여 전열 보강, 천문령 전투
③ 고구려 계승 의식 표방(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復高麗之舊居, 有夫餘遺俗’이라 함)
무왕(727)
759년 문왕 스스로 ‘고려국왕 대흠무’, 이에 일본에서도 발해왕을 ‘고려국왕’, 발해사를 고려사(使), 발해국을 고려국으로 표기
④ 남북국 시대론 대두
- 최치원(발해를 북국으로 지칭‘, 당시 신라에서도 ’북국‘이라 부르기도 했음, 삼국사기, 제왕운기(고려 시대에도 발해를 우리 민족이라 봄)
- 유득공(발해고), 김정호(대동여지도), 장도빈, 안확
유득공이 <발해고> 서문에서 ‘남북사’ 용어 사용, 이후 김정호가 1864년<대동지 지>에서 다시금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써 당위성 강조
⑤ 발해의 고구려 계승 측면과 신라의 삼국통일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 정립 필요
⑥ 신채호 : 발해 건국 호평
2. 종족구성
1) 지배층에 대한 이견
1) 말갈족
2) 고구려인
① <송막기문> : 대씨,고씨,장씨,양씨 등 고구려 집단 多
고고학적으로 뒷받침 - 육정산 고분군의 고분양식과 매장습속(대형석실분은 고 구려적 요소 强, 이보다 작은 무덤은 말갈요소 强)
ex) 정혜공주묘, 장법
② <유취국사>(일본사서) 에도 고구려인이 지배층, 토인을 고구려 인이라고 봄
③ 발해인 스스로 말갈인이라 한적 없음
④ 말해에 압말갈사(말갈을 관할하는 직책) 有, 792년 발해사신이 압말갈사 자격으로 말갈인을 이끌고 당에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