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1세와 튜더왕조 그리고 셰익스피어_엘리자베스 1세의 연극 사랑
- 최초 등록일
- 2012.12.03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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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엘리자베스 1세와 튜더왕조에 관한 역사 및 여왕의 연극 사랑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Tudor왕조의 성립
2. 엘리자베스1세의 Tudor왕조
※셰익스피어가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
3.엘리자베스 1세의 연극 사랑
본문내용
1. Tudor왕조의 성립
장미전쟁을 수습하고 즉위한 헨리 7세가 시조이다. 그는 장미전쟁에 따른 유력 귀족의 몰락을 이용하여 성실청 재판소 등을 재편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등 절대주의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이 기초 위에 그의 아들 헨리 8세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로마 교황청과 절연하고 영국 국교회를 수립하였으며 종교도 왕권 밑에 들게 하여 절대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중략>
여왕은 연극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에는 궁정에서 많은 연극이 공연되었으며, 때로는 한 시즌에 열한 편이나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궁정의 연극은 주로 왕실 예배당의 젊은 합창단이나 폴스 소년 합창단이 공연했지만, 성인 연극단도 궁정을 자주 방문했고 여왕의 치세 말기에는 소년 합창단보다 이들이 여왕 앞에서 연극을 더 자주 공연했다. 청교도들은 연극에 관심을 보이는 엘리자베스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배우는 인간말종이었고 극장은 갈봇집이나 다를 바 없었다. 청교도 성향을 가진 시 당국의 탄압에서 연극을 보호하기 위해 전문 극단들은 궁정의 유력인사를 자신들의 보호자로 초빙했다. 1559년에 로버트 더들리는 자기 이름을 극단에 빌려주었고, 우스터 백작, 옥스퍼드 백작, 더비 백작, 초대 및 2대 헌즈던 백작 등 여러 지도층 귀족들도 연극을 보호해 주었다. 이들은 여왕과 가까운 사이였으므로 극단이 부당하게 탄압받을 경우 여왕에게 말해서 그 사태에 개입하도록 조처할 수 있었다.
1583년에는 곰 경기장에서 관중석의 비계가 무너져 여덟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시 당국은 공공안전을 구실로 삼아 모든 극장을 폐쇄하려 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는 퀸즈멘이라는 자신의 소유 극단을 창설했다. 한 문헌에 따르면, 그 조치는 월싱엄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월싱엄은 사상적으로는 청교도적이었으나 연극을 굳건히 옹호했다). 여왕은 기존의 극단에서 최고의 배우 열두 명을 충원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고용인으로서 맹세를 하게 한 다음 고용인이 입는 제복을 입혔다.
참고 자료
http://kin.naver.com/knowhow/entry.php?d1id=10&dir_id=10&docid=524971&qb=7Yqc642U7JmV7KGw7J2YIOyYgeq1reyXsOq3uQ==&enc=utf8&pid=frN0KB331xhssctWcqVssv--256133&sid=SrctYCoXt0oAAER2Ip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