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신라 불교 수용의 특성과 발전 방향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2.11.29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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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 불교 수용의 특성과 발전 방향에 대한 고찰
목차
一. 머리말
二. 신라의 불교 수용의 특성과 발전
1. 불교 전래의 어려움
2. 불교의 공인
3. 불교 수용의 역사적 의의
三. 맺음말
본문내용
신라의 불교 공인은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150년 가량이나 늦다. 兵部(병부)창설(517년)과 율령반포(520년) 등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강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인 법흥왕(514-540)때(52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공인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상당히 많은 傳敎(전교)의 노력이 있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보통 최초의 전교자로 묵호자를 드는 설은 김대문의 [鷄林雜傳(계림잡전)]을 인용한 [삼국유사]의 기사이다.
눌지 마립간(417~458) 때 墨胡子(묵호자)라는 승려가 고구려에서 一善郡으로 들어 왔다. 그 고을 사람 毛禮(모례)가 집안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들고 그를 모셨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때 마침 粱(宋의 잘못인 것 같다)나라에서 사신이 향을 가지고 왔는데 아무도 그것이 무엇이며 어디에 쓰는 건지 몰랐다. 모례 집에 살던 묵호자만이 그것을 알아보고 "이것은 향이라는 것이오. 태우면 향기가 풍겨 神聖(신이나 성인)에게 이른다오. 그런데 三寶(불,법,승)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소. 만일 이것을 태우며 發願(발원 = '기도')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을 것이오."라 말했다. 때 마침 공주가 중병에 걸렸는데 묵호자를 불러다 향을 사르며 발원하니 곧 나았다. 왕이 기뻐하면서 예물을 후하게 주었는데 갑자기 간 곳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삼국유사]권3, 홍법)
참고 자료
1974, 이기영, 《한국의 불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8, 고익진, 《한국의 불교사상》, 東國大學校出版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