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종교의 제도적 변화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2.08.14
- 최종 저작일
-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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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의 종교들의 역할 과 기능의 변화의 추이는 북한종교를 제도적으로 접근할때 선명하게 확인할 수있다.
북한 정권의 북한종교에 대한 정책의 변화로 인해 북한종교안에 제도적 변화가 나타났다.
그 제도적 변화는 종교법 제도의 수정으로 먼저 나타났고 북한의 각 종교들(기독교,불교,천주교)의 활동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목차
북한종교의 제도적 변화 연구
1. 북한종교의 제도적 변화요인
2. 종교관련 법 제도의 수정
3. 북한종교의 제도적 변화 양상
4. 북한의 각 종교들의 현황
본문내용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종교 정책의 변화를 꾀하게 하였고 북한 정권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북한 종교 안에 종교 본연의 규범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북한 종교 안에서 비지배적인 제도가 표출된 것은 1988년부터이다.
물론,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모든 종교들이 활동을 재개했지만 이때는 대남비난 및 통일전선 등의 지배적 제도가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비지배적 제도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었다. 1988년 이전까지 종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북한 정권은 1988년을 기점으로 종교 정책의 변화를 꾀하면서 1988년 평양에 서양식 건물 형태의 봉수교회와 장충 성당을 건축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과시하게 된다. 이는 1980년대에 시작된 해외교포 종교인들의 빈번한 방북이 이러한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이 시기에 교포 종교인을 적극 초정, 이들과 종교인회담 및 해외에서 반한종교인집회를 갖는 등 통일전선 전략에 치중했었다. 그러나 1988년 국제 올림픽 개최지로 남한의 서울이 확정되자 북한 정권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고심하던 북한 정권은 서울 올림픽을 견제하기 위해 1989년 평양에서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개최를 계획했고 그 준비 차원에서 북한 종교에 어느 정도의 외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북한 종교들은 많은 외형적인 변화와 더불어 각 종교들의 종교적 활동도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단지 ‘대외선전용’으로 종교건물을 건축하려고 한 북한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점차적으로 북한 종교 안에 종교 본연의 규범이 작동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