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의천과 지눌의 사상비교분석
- 최초 등록일
- 2002.11.24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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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레포트
목차
[1]의천
1.의천에 대하여
2.의천의 업적(화엄종)
[2]지눌
1.지눌에 대하여
2.지눌의 업적(정혜결사운동과 불교개혁운동의 의의)
[3]의천과 지눌의 사상비교
1.의천(儀天)의 사상
2.지눌(知訥)의 사상
[4]나가며->종합
-참고 도서-
본문내용
1.의천에 대하여
고려의 승려이자 천태종의 시조, 그리고 문종의 넷째 아들인 의천. 그의 이름은 후(煦)이고 자는 의천(義天)을 썼으며 나이 13세 때에 '우세승통'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의천에 의해 고려 숙종 2년 국청사에서 정식으로 설립된 천태종은 594년 수나라 개황 14년 중국의 지지대사가 법화경을 중심으로 5시 8교 교관과 일심삼관의 수행법으로 선(禪)과 교(敎)를 통합하여 만든 종파이다. 지지대사가 계시던 산이 천태산이므로 그 이름을 따서 천태종이라 한다. 우리 나라에 처음 천태교학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 백제 현광법사로 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후 조선조의 억불정책에 따라 5백여년 동안 역사 속에서 잠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근세에 이르러 상원대각조사에 의해 다시 일어나 계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가고 있다. 의천은 1065년에 화엄사의 고승 난원을 따라 출가하여 불일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영통사에 있으면서 그때부터 학문에 귀기울였다. 특히 화엄교학을 깊이 연구하고 탐구하여 도덕과 계행이 매우 높았다. 1084년에 송나라로 건너가 계성사에서 유성법사에게 화엄.천태 양조의 오의를 배운 후 여러 절을 찾아다니며 법을 익혔다. 귀국하여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두어 많은 책을 간행하였다. 스승 경덕국사가 입적한 뒤에는 31세의 약관(弱冠)으로서 그 학도들을 맡아 강의를 하여 명성이 천하에 널리 알려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