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시기의 한중관계
- 최초 등록일
- 2012.05.29
- 최종 저작일
- 2012.05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명청시기의 한중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목차
1. 머리말
2. 명·청 시기 이전의 한·중 관계
3. 명·청 시기의 한·중 관계
(1) 명나라 시기의 한·중 관계
(2) 청나라 시기의 한·중 관계
4. 맺는말
본문내용
1. 머리말
동북아의 문명고국(文明古國)인 한·중(韓中) 양국(兩國)은 가까운 지리적 위치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서로 왕래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약 2000여 년이 넘는 한·중 왕래를 통하여 두 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광범위하게 교류를 해 왔다. 동일한 유가사상(儒家思想)과 한문화(漢文化)를 계승하고 그를 통해 발전해 온 두 나라의 관계는 갈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되었다.
2. 명·청 시기 이전의 한·중 관계
한·중 사이의 문화교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108년 전한(前漢)의 무제(武帝)1)는 한반도 북부지구의 낙랑(樂浪)·진번(眞番)·임둔(臨屯)·현토(玄?)2) 등 4개의 한나라의 행정 군현에서 한나라의 제도를 실행하였다. 이는 비록 한·중 양국 간의 정식 왕래는 아니지만, 이때 문화면에서의 교류가 시작된다.
기원전 1세기는 한국에서 신라(新羅)·백제(百濟)·고구려(高句麗)의 삼국시기이다. 이 시기로부터 시작하여 한·중 양국 간의 왕래는 더욱 밀접해졌다. 편리한 육로와 해로의 교통을 통하여 양국 간의 문화교류는 한층 발전을 가져왔다. 이때 한반도의 삼국은 유가사상을 수용하였고 제도를 본받았다. 마침 이 시기에 한·중 두 나라는 정식으로 ‘책봉조공(冊封朝貢)’ 관계를 수립하고 정식으로 상호 왕래하였다. 서로 간의 사신은 두 나라간의 교류의 중요수단이었다. 삼국은 외교적인 사명을 완성할 뿐만 아니라, 양국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교량역할(橋梁役割)을 하였다. 진(晉)나라 때부터 남북조(南北朝) 6세기 전후 한반도의 삼국은 계속 중국과의 조공관계를 유지하였다. 고구려는 육로를 이용해 북위(北魏)와의 관계를 맺었고 신라와 백제는 해로를 통해 남북조와의 교류 관계를 맺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