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농법 발달과 사회의 변화
- 최초 등록일
- 2012.04.03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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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농법 변동과 생산력, 간단한 사회변동 자료입니다. 참고자료 많고 깔끔하게 정리!
목차
2 조선의 농업 환경과 농법의 발전
2-1 조선 전기의 농업 환경
2-2 조선 후기의 농법 발전과정
2-3 농업생산력의 향상
3 조선 후기 농업과 사회 변화
3-1 농민층의 분화와 신분제의 변동
3-2 소작료의 변화
3-3 상업적 농업의 발달
- 상업적 농업과 그 주도세력 -
- 다양한 상품 작물 -
본문내용
2 조선의 농업 환경과 농법의 발전
2-1 조선 전기의 농업 환경
농업에서 가장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기후이다. 그 당시에도 봄 가뭄, 장마, 여름 홍수 등이 빈번했을 것이라고 예측되며 이는 한 해 수확량을 결정지었다. 현재도 자연 재해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물을 가두는 댐이나 저수지가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관개시설을 갖추고 이를 활용하려는 노력이 농업 장려 정책을 펴는 데 우선순위였을 것이다. 조선은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제언을 축조하였고 지주나 사대부들에게 소규모의 천방(千方)을 건설할 것을 권장하였다. 그러나 농업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
총 토지는 15세기에 이미 152~171만결에 달하였는데, 이는 최소한 434만 헥타르 내외의 면적으로 평가된다.1) 조선 후기 조사에도 이와 비슷한 토지 결수를 보이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은 한전이었고 수전은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조선시대는 벼농사보다는 조,콩 등의 밭작물을 재배했던 것이다. 토지는 이용 방법에 따라 휴경전(休耕田)과 상경전(常耕田)으로 나눌 수 있다. 조선 전기부터 시비법의 발달로 이미 휴경전이 소멸되어 주로 1년1작, 2년3작으로 경작했는데, 2년3작이 일반적이었다. 비료는 최대의 효율을 내기 위해 분종법을 써야 했다. 그래서 대부분 파종시에 뿌려졌고, 비옥한 토지에는 시비하지 않고 척박한 토지에만 비료를 주어야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