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한국중세사, 고려] 고려초 호족연합정권설
- 최초 등록일
- 2002.10.28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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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호족연합정권의 정의와 동향
1. 호족연합정권의 정의
2. 시대별 호족세력의 동향
Ⅲ. 호족 연합정치의 운영실태
1. 호족들과의 인적·사적 결합
2. 제도적 운영
3. 호족연합정권설의 지지의견
Ⅳ. 호족연합정권설의 비판과 문제점
Ⅴ.결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신라말·고려초의 전환기 사회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주인공은 지방세력이었다. 이들 지방세력을 흔히 '호족'이라 부르며, 이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 결과 호족의 실체에 대해 상당한 이해가 축적되었고, 신라말·고려초기를 '호족의 시대'로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고려초기의 정치적 성격을 지금까지는 흔히 호족 연합정권으로 이해하여 왔는데, 최근 이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대두하고 있다. 그러면 고려초기의 정치적 성격을 살펴보자.
Ⅱ. 호족 연합정권의 개념과 시대별 호족세력의 동향
·호족 : 호족은 족단을 기초로 한 혈족집단의 수장으로서, 혈연집단은 신라시대부터 촌락을 구성하는 사회적 기초였고 나말려초기를 거쳐 고려 후기에 이르러 족단 내부의 계층분화가 진행되기까지 정치, 사회적 기초단위 집단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성주, 장군이라 자칭하면서 지방사회를 통치하였고 중앙의 정치기구를 모방한 독자적인 지배기구 즉 관반제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경제력은 물론 권력과 무력을 갖추고 문화를 독점적으로 향유하였으며 사상적으로는 당시 새로이 전래된 선종불교를 받아 들여 이를 후원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정한 지역에서 대두한 호족 중 세력이 가장 큰 호족은 그 수장을 통하여 하위호족을 지배하였다. 고려왕조 성립 후 호족들은 두 가지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하나는 중앙으로 진출하여 문벌귀족화하게 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에 남아 있으면서 왕권강화와 더불어 향리화의 길을 걷게 되는 부류이다. 그러나 지방에 남아 있던 향리들도 과거나 천거를 통해 중앙관리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었다.
⇒ 대토지 소유라는 경제력을 근간으로 하여 권력이나 무력, 그리고 문화의 독점력까지 갖 춘 지방의 유력한 족단이나 그 일원을 가리킴.
1. 호족 연합정권 : (정치학적으로) 독자성을 가진 호족들이 상호간의 조역이나 합의를 통해 창출한 정권. 그리하여 호족들의 지배 영역은 하나의 독립국처럼 되어있고, 지방과 중앙과의 관계가 거의 평등하였다.
2. 시대별 호족세력의 동향
1) 왕건 즉위 초 호족의 동향
태조 왕건은 건국 초에 궁예를 지지하고 있었던 각 지역 호족들의 반발과 저항에 직면하게 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세를 관망하고 있던 호족세력들이 후백제로 기울어짐에 따라 정치적 불안이 가중되어 갔다. 이에 왕건은 호족 포섭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의 적극적인 대호족 포섭정책은 많은 호족들이 귀부해 오면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후삼국 성립 시기의 각 지역의 호족세력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삼국 간의 세력 판도에 따라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과 이해 관계에 의해 또는 지리적 여건에 따라 고려나 후백제 또는 신라 측에 가담하였다. 특히 옛 신라영역에 해당된 호족세력들은 고려와 후백제의 각축전이 전개되는 동안 견훤의 무력주의 노선을 배척하고 평화주의를 표방한 태조 왕건을 지지함으로<font color=aaaaff>..</font>
참고 자료
하현강,『고려왕조의 성립과 호족연합정권』,『한국사』4, 국사편찬위원회 1974.
박창희,『고려초기 '호족연합정권'설에 대한 검토』, 『한국사의 시각』1984.
신호철,『후삼국시대 호족연합정치』, 『한국사상의 정치형태, 일조각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