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미술감상
- 최초 등록일
- 2011.12.11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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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징과 렘블란트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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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징
1581-1674 이후
조선 중기의 화가
본관은 전주, 자는 자함, 호는 허주,
16세기의 대표적인 문인 화가 이경윤의 서자
벼슬은 주부를 지낸 바 있음
인조 때의 화가인 이징이 어렸을 때 누대에 올라 그림공부를 하고 있었다. 집을 나와 며칠을 그림에만 몰입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이징을 찾아다녔을 테고 3일만에 결국 이징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반가움 보다는 분이 나고 화가 나서 회초리로 때렸다. 당연히 어린 이징은 회초리를 맞으면서 아픔을 느꼈을 텐데 이징은 울면서 그 떨어지는 눈물로 새를 그리고 있었다.
도화서의 화원이었으며, 수행 화원으로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고, 궁중의 행사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1645년에 중국인 화가 맹영광이 소현세자를 따라 조선에 왔다가 3년간 머무르고 돌아간 적이 있는데, 머무르는 동안 그와 가깝게 지내기도 하였다.
산수와 인물, 영모, 초충 등을 모두 잘 그려 당시에 가장 기량이 뛰어난 화가로 평가받았다.
이사람은 법도 안에 있어서 얌전하게는 그리고 규격대로는 잘 그리지만 그것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즉 독창성이 없다
수묵산수화, 이금산수화, 동물화, 인물화
〈연사모종도>,〈이금산수도>,〈노안도>, <문월도>, <김시습상> 등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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