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 막부의 다이묘 통제책
- 최초 등록일
- 2011.11.30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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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도시대 막부의 다이묘 통제책
목차
1.다이묘란
2.에도시대의 다이묘
3.에도막부의 다이묘 통제
4.무가제법도
5.산킨코타이
6.산킨코타이의 효과
본문내용
정권안보를 위해 도입한 산킨코타이는 경제발전이라는 뜻하지 않은 효과를 낳았다. 당장 인질로 잡힌 처자식이 에도에서 생활하는 데 돈이 들었다. 전국 각지의 다이묘 260여명이 영지에서 에도를 왕복하는 데는 더 많은 돈은 물론 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했다.
원칙적으로 반년은 에도에서, 나머지 반년은 영지에서 근무해야 하는 다이묘가 움직일 때 수행원은 평균 100~150명선. 수행원 2,775명을 데리고 다녔던 다이묘도 있었다. 일본 서남단에서 에도까지 걸린 시간은 왕복 100일. 다이묘 행렬이 길에서 먹고 자면서 뿌리는 돈으로 유통경제가 싹텄다. 5대 간선도로망인 고카이도(五街道)가 완비되고 요즘도 주식시장에서 쓰이는 일봉 차트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상업의 번성으로 에도 인구는 100만명선을 넘어섰다. 전체의 도시인구 비율도 5~7%로 높아졌다. 런던 인구가 70만명, 유럽의 도시인구 비율이 2% 남짓한 시절이다. 다이묘에게 돈을 빌려준 상인들은 거대 금융업자로 떠올라 ‘오사카 상인이 화를 내면 전국의 다이묘들이 떤다’는 말도 생겼다.
오늘날 일본의 복잡한 국내 유통구조와 상업금융자본이 형성된 것도 이때부터다. 산킨코타이의 결과물인 도로망의 확충과 인력의 이동, 유통 경제의 활성화가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의 속을 상업의 나라로 바꾼 셈이다
참고 자료
http://ask.nate.com/qna/view.html?n=8491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