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가 과연 한국사인가
- 최초 등록일
- 2011.10.12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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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해는 한국사일까요?
목차
Ⅰ. 머리말
Ⅱ. 말갈족 대조영
Ⅲ. 발해의 건국과정
Ⅳ. 발해의 주민구성
Ⅴ. 발해의 영토
Ⅵ. 발해의 문화
Ⅶ. 발해의 고구려 계승 문제
Ⅷ. 발해를 한국사로 볼 수 있는가?
Ⅸ.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를 비롯한 북방의 여러 나라들, 즉, 고조선, 발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측에서는 동북공정으로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우리 측도 고구려연구재단등을 통하여 학술적으로 반박, 정부도 외교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명백히 고조선이나 고구려는 우리의 역사다, 하지만 과연 발해도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을 할 수 있는가? 단순히 동북공정에 반박하고 발해사를 지켜내기 위하여 민족주의사적으로 발해사를 접근하고 있지는 않는가? 여기에서는 한국과 중국 측의 사서를 중심으로 발해의 건국부터, 문화, 영토, 주민을 살펴보고 과연 발해사를 한국사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Ⅱ. 말갈족 대조영
대조영 집단은 원래 속말말갈의 거주 지역에 살다가 고구려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대조영 집단은 원래 속말말갈족으로서 원거주지였던 속말강 유역에 거주하다가, 6세기 말 이전에 고구려로 옮겨와 정착하였다. 이들은 요동지방의 태자하 부근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말갈추장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고구려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군사 활동에서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니, 대조영도 고구려 장수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대조영의 출자유형에 대해서는 『구당서』유형과 『신당서』유형이 있는데 기본이 되는 『구당서』에서는 ‘발해말갈’로 규정하면서도 ‘고구려 별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신오대사』에서는 발해말갈이란 말을 서술문장으로 풀어 써서 뜻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 『자치통감』에서는 발해말갈이란 용어를 삭제하고 고려별종이라고만 하였으나, 다른 곳에서는 발해말갈이란 용어가 그대로 나온다. 『오대회요』에서는 ‘고구려 별종’이란 말 대신에 ‘고구려 종족’이라고 표현하였고,『송회요』,『송사』에서는 발해말갈이란 말 대신에 ‘발해’라고만 하였다. 이처럼 후대로 내려올수록 말갈적 요소보다는 고구려 쪽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구당서』의 규정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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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국, 『발해사, 발해의 건국과 주민구성』, 한국학술정보, 2006
서병국, 『발해제국사』, 서해역사책방, 2005
김재선, 『한글 동이전』, 서문문화사, 1999
한규철, 「발해국의 주민구성에 관한 연구」, 『경성대학교 인문학 논총』13,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