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 호족연합정권설의 문제 2
- 최초 등록일
- 2002.10.05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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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호족 연합정권설 비판
(2)호족연합정권의 개념
(3)고려초기의 정치형태
본문내용
- 호족 연합정권설 비판
그러나 이 호족 연합정권설에 대해 많은 비판과 반론이 제기되었다. 우선 호족의 독자성과 관련된 사병문제에 대한 비판이 가해졌다. 즉 국왕에 대한 신하의 위치에 있었던 환선길 · 왕순식 등과 관련된 其徒五十餘人이나 卒六百은 그들이 군신관계에 존재해 있는 이상 완결된 독립 세력일 수 없다. 둘째로 호족과 왕권과의 관계에서 성립된 '귀부(歸附)'의 문제도 재검토되었다. 즉 고려태조와 귀부호족과의 관계가 서로 호혜적 혹은 협조적 관계였다는 견해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태조대에 있어서 호족의 귀부는 인질을 개경에 두는 것을 상례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사태는 국왕의 필요에 의하여 강요된 사태인 것이며 다른 면에서는 호족이 국왕에 신속(臣屬)됨으로써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권위를 후광으로 삼고 지방에 안정세력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려는 필요에 의해 창출된 것이다. 결국 호족의 국왕에 대한 귀부(歸附)란 군신적 상하관계의 성립을 말하는 것이라 하고 있다. 셋째로는 태조의 호족연합정책 중 중요하게 거론 되어져온 혼인정책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태조가 유력 호족들과 결속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후비(后妃)들의 출신지가 주로 고려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점, 그리고 한 가문에서 2,3명의 비(妃)가 나온 점 등에서 태조가 의도적으로 정략결혼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후비들의 친부가 태조의 측근으로 중앙에서 자신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왕실과의 통혼(通婚)을 절실히 원했던 데서 이루어진 것이라 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