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고려초 왕실혼인
- 최초 등록일
- 2002.09.23
- 최종 저작일
- 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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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려는 호족을 종합하여 성립한 국가이다. 신라, 후백제,고려 어느나라에 의해 재차 통일이 될 수 있는가는 호족들을 잘 종합할 수 있는 가에 달려있었다. 신라는이미 그러한 그러한 능력이 없었으므로 백제와 고려가 호족의 지원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왕건이 즉위한 후 5일 째 되던날 혁명내부 세력 가운데 왕건의 왕위를 넘보고 왕권에 도전한 반혁명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뒤 궁예의 정치적지지 기반이었던 청주지역 호족세력들이 모반을 꾀하여 왕건에 저항하였으며 일찍이 궁예의 세력기반이 되었던 명주지역 대호족인 김순식이 배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등 많은 호족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이에 왕건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덕을 발휘하여 호족들을 포섭하였다. 이러한 태조의 포섭정책으로 많은 호족들이 귀부하였는데 이러한 호족들에게 보답하기위해 왕건은 벼슬을 주거나 왕실과의 혼인을 주선하였다. 이렇게 호족의 지원 호응을 얻기위해 왕건이 기울인 노력은 대단하다. 왕건은 확고한 지지세력을 얻기위해 유력한 호족의 딸과 혼인을 하기도 하였다. 왕건은 6명의 왕후와 23명의 부인을 맞고 있는데 대체로 정략결혼에 의한것으로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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