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묘 답사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1.06.01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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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사 교양 과제 답사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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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작년 이맘 때 난 노량진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 바로 옆에 두고도 못 간 사육신묘를 이번 답사 장소로 결정했다.
다시 찾은 노량진에는 예전처럼 가판 상인들의 번잡함과 고시생들의 분주함이 있었다. 그들에게 비춰지는 치열한 삶의 모습을 뒤로 하고 역에서 조금 떨어진 사육신묘를 찾았다. 사육신묘로 가는 길에 사육신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았다. 성삼문, 박팽년... 거기까지였다. 국사를 배운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핑계로 머쓱함을 무마하고 이번 기회에 사육신을 다 외우고 오리라 목표를 세우며 사육신묘에 가는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육신묘 역시 다른 서울의 유물들과 비슷하게 동작구 차원에서 지역주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되어있었다. 사육신을 기리는 사당과 묘를 주변으로 공원을 만들어 한강을 끼고 경치 좋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이미 많은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붉은 홍살문이 들어오는 입장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홍살문을 지나가며 옛 시대의 유물인데 비해 보존이 잘되었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고 약간 씁쓸했다. 그래도 시대의 특색에 맞게 복원 해 놓은 모습에 관리의 노력이 느껴졌다.
홍살문을 통과하자 불이문이라는 현판을 단 문이 나타났다. 따로 설명을 보지 않고도 불이문이라는 현판을 단 이유를 알 수 있을 듯 했다. 사육신은 1455년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제6대 임금에 오른 숙부 세조에 항거하여 세조2년(1456)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처형된 여섯 명의 충신이다. 불이문은 바로 이러한 사육신의 두 임금은 섬기지 않겠다는 절개를 뜻하는 문이었다. 사육신들은 이후 1691년 숙종에 의해 관직이 복구되고, 이곳에 민절서원을 세워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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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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