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인가 남북국시대인가?
- 최초 등록일
- 2011.04.08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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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통일신라에 대한 레포트가 많지만 남북국시대에 대한 논쟁의 자료읿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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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서론 -
현재는 통일신라시대와 발해 모두 우리나라의 역사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과거에는 신라의 삼국통일이 중시되어 발해를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발해는 지금의 북한과 중국 동북 3성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지방에 자리 잡았던 국가기에 남한에서는 유물이나 유적은 물론이고 실증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점점 북방민족 역사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고구려와 발해 등 역사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통일신라와 발해를 묶어 ‘남북국시대’라는 시대 명을 만들어냈다. 시대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어떤 표준에 의하여 구분한 일정한 기간을 뜻한다. 이때 그 사용은 보통 국가 명 뒤에 붙거나, 어떤 정세상황 혹은 세력판도 뒤에 붙는다. 이 때문에 통일신라시대 역시 통일이후 신라가 존속했던 시대라는 뜻이므로 잘못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발해시대 역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에 이 글에서는 통일신라시대라는 명칭의 형성과정, 통일신라시대라는 명칭과 남북국시대라는 명칭의 차이점, 발해의 역사, 통일신라에서 남북국시대로 호칭이 변화하는 과정 등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 본론 -
먼저 통일신라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왜 통일신라시대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신라는 당나라와의 연합을 통해 고구려 영토의 일부와 백제를 통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신라의 경주를 중심으로 한 귀족들은 `일통삼한`이라고 말함으로써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하였다. 청주 운천동 사적비: 충청북도 청주시 운천동에 소재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내력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특히 수공 2년이랑 연호와 함께 야간, 보해, 해심법사 등의 관직명과 승려이름이 있어 당시 사회상을 아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청주 운천동 사적비(신문왕 6년,686)`를 보면 "삼한을 통일하니 나라의 땅이 넓어졌다.` 는 기록이 나온다. 또 `황룡사 9층 목탑 찰주본기(경문왕 12년,872)`에서는 "이러한 결과로 과연 삼한: 상고시대(上古時代)에 한반도 남부에 자리잡고 있던 3부족사회(三部族社會)이다.
삼한이 하나가 되고 군신이 안락하게 되었으니 지금도 이 탑에 의뢰하고 있다." 는 기록이 있다. 또 최치원은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경명왕 8년.924)`에서 "삼국이 이제야 장하게도 한집안이 되었구나."라면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찬미하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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