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인의 작품분석
- 최초 등록일
- 2010.12.17
- 최종 저작일
-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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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석 시인의 생애 및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를 평론 형식으로 작성한 글.
목차
1. 백석의 생애
2. 첫 시집 《사슴》의 분석
3. 《사슴》이후의 작품 분석
4. 백석의 연애시
참고자료
본문내용
1. 백석의 생애
1912년 백석 백기행은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우리의 전통적 민요를 노래한 것으로 유명한 김소월이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지 10년 뒤의 일이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선생들이 근무하던 오산학교를 다녔는데 그 학교 선배인 김소월을 항상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백석의 시풍에는 김소월처럼 그 지역의 독특한 풍속이 깊이 배어 있다. 흔히 서도라고 일컬어지는 평안도 지역, 그 중에서도 평양과 정주는 개화기 이후 다른 어느 곳보다도 개방적이고 진취적이었다.
오산고보를 졸업한 이후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조선일보 기자 생활도 하고 함흥으로 내려가 영생고보에서 교직 생활도 하였다. 일제 말기 만주로 건너가 의식주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측량서기도 하고 세관업무에 종사도 했다는 백석 시인의 연보는 해방 후 귀국해서 신의주에 머물렀다는 것 이외에는 자세히 밝혀진 것이 없다. 40년대 초까지는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했지만 해방 뒤에는 기껏 3편을 발표하고 그것도 친구인 화가 허준이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그 뒤 북쪽에서 발표한 <공무여인숙> 등 10여 편의 시와 동화시 <집게네 형제>,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등의 작품이 발굴되었다. 남한의 정보 당국은 그를 월북 작가로 분류하여 시집을 금서 속에 포함시켰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월북한 불순 시인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손쉬워서였다. 그가 본디 프롤레타리아 시와는 거리가 먼 시인이었던 만큼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해보거나 판단할만한 지혜도 성실성도 없는 것이 남한의 정보기관이었던 것이다. 6.25 당시 국군이 평양까지 올라갔을 때 군수를 했다는 둥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둥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모두 확인할 길 없는 뜬소문일 뿐이다.
참고 자료
이동순 편, 《백석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7.
이학동 편저,《백석전집》, 새문사, 1990.
김자야 저, 《내 사랑 백석》, 문학동네, 1995.
신경림 저, 《시인을 찾아서》, 우리교육, 2002.
서울대학교 편,《권장도서해제집》, 서울대출판부,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