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서양의학사를 정리한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0.09.19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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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서양의학사를 정리한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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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년 4월 10일, 미국인 선교의사 알렌(H. N. Allen, 1858~1932)의 병원설립 건의를 고종이 받아들여 개화파 홍영식의 집이었던 서울 재동(현재 헌법재판소 자리)에 광혜원을 세우면서부터입니다.
1884년 9월, 최초의 선교의사로 한국에 온 알렌은 1884년 12월, 갑신정변에서 심하게 부상을 당한 민비의 조카 민영익을 살려내면서 서양의학의 효과를 입증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세워졌고 곧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꾼 후 왕실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진료하는 기관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개원 첫해만 10,000여명의 환자를 진료했다고 하니 서양의학에 대한 당시 관심의 정도는 엄청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제중원은 보다 많은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1887년 구리개(현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부근)로 이전, 병원의 규모를 확대했습니다. 제중원은 정부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동시에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전자는 재정지원과 행정을, 후자는 의사와 간호사의 파견 및 진료, 병원 운영 등을 담당했습니다.
제중원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알렌은 계획한 대로 한국 내 의료진 양성을 위해 의학교육을 추진하였고, 드디어 1886년 3월 29일, 경쟁시험을 통해 선발된 16명의 학생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의학교육 기관인 제중원의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1887년 9월, 알렌이 주미 한국 공사관의 참찬관으로 취임하자 제중원의 책임은 헤론(J. W. Heron), 빈튼(C. C. Vinton)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병원의 운영은 점차 부실해졌습니다. 그러자 1893년 7월, 새로 부임한 에비슨(O.R. Avison, 1860~1956)은 정부에 제중원의 정상화를 위한 요구 조건을 내걸었고 마침 운영비를 부담할 여력이 없었던 정부는 1894년 갑오개혁 때 제중원의 운영권을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로 넘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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