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왕생가의 기존 학자들의 견해 정리
- 최초 등록일
- 2010.07.08
- 최종 저작일
- 2010.04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가시리의 원문을 싣고, 가시리에 관한 기존 학자들의 견해와 논란거리, 감상을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작자에 대한 논란
2. 「원왕생가」의 해독
3. 감상
본문내용
향가와 관련된 연구는 향가 전반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개개의 작품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특히 배경설화와 작품을 연관지어 작자를 밝혀내려는 연구는 더욱 활발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원왕생가」이다.
이런 「원왕생가」를 연구하는데 있어 선결해야 하는 과제는 작자문제이다.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는 향가 14수 중에서 풍요와 헌화가를 제외하고는 작자가 밝혀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작품에서의 작자에 대한 시비가 있는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작자를 설화적 인물로 보려는 태도
둘째, 삼국유사의 원문 해석의 차이에서 야기되는 견해
셋째, 실존 인물에서 찾으려고 하는 점이다.
이 글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원왕생가」의 작자 문제는 그동안 심도있게 연구되어 왔다. 「원왕생가」의 작가가 광덕이냐 아니면 광덕의 처냐 하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엄장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원효설이 제기되고 있다.
작자 시비의 요인은 「원왕생가」의 배경설화인 ‘광덕·엄장’조에서 비롯되었다. 즉, “基婦乃芬皇寺之婢盖十九應身之一德賞有歌云”이란 구절 때문이다. 현재 삼국유사 판본은 한결같이 구두점이나 방점없이 부분적으로 띄어쓰기가 되어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시비를 가져왔다.
첫째, 광덕처설의 근거는 최남선이 삼국유사를 편집할 때 띄어쓰기를 하고 구두점과 방점을 달았기 때문이다. 인용하면 “基婦乃芬皇寺之婢 盖十九應身之一德 賞有歌云”이다. 이처럼 띄어쓰기를 한 결과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 부인은 분황사의 시비로서 대개 관음 보살의 십구응신 가운데 하나이다. 일찍이 노래가 있었는데 이르기를
이 같이 띄어쓰기를 한다면 “부인에게 일찍이 노래가 있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둘째, 광덕설은 광덕처설을 비판하며 주장한 것으로 근거는 다음과 같다.
“基婦乃芬皇寺之婢 盖十九應身之一 德賞有歌云” 이렇게 띄어쓰기를 하게 되면,
“그 부인은 분황사의 시비로서 대개 관음보살의 십구응신 가운데 한 분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