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 방문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9.12.20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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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 방문보고서
목차
1.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의 일반적 상황
2. 주요 활동
3. 조직
4. 재정
5.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 향후 활동계획
6. 느낀 점
본문내용
1.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의 일반적 상황
1)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 설립배경
1987년은 한국사회 이주노동의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로 ,미국으로, 사우디로 돈 벌러 갔던 코리안 이주노동자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꾸며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나라가 된 한국은 입국하기도 쉽고 일자리도 구하기 쉬운 기회의 나라였다. 이때부터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가난한 나라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때 한국 정부는 생산직에서 일하는 외국이주인노동자에게 합법적 비자를 발급하지 않아 1987년부터 90년대 초까지 입국한 노동자들은 전원 미등록 노동자였고, 급격히 증가하는 미등록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1994년 ‘외국인 산업연수제 라는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1994년(그 뒤로도 2003년 12월까지) 한국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미등록 노동자(80%)와 소수의(등록 외국인노동자 15%) 산업연수생(5%)이었다. 미등록노동자와 산업연수생은 ‘현대판 노예’라고 불리울 만큼 장시간노동, 저임금, 임금체불, 산업재해, 폭력, 욕설, 여권압류 등 인종차별과 무자비한 단속‘ 강제추방 등 수많은 인권 침해를 당했다.
그런 와중에 한국사회에 외국인이주노동자 문제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두 사건이 발생하였다.
1994년 1월 산업재해를 당한 외국인이주노동자 11명이 불법체류자라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면서“한국 정부는 외국인노동자에게 산업재해를 적용하라”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방글라데시, 네팔 외국인이주노동자 11명은 욕설과 구타 등 비인격적인 대우는 물론 손가락이 잘리고 불구가 되는 등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서도 보상금은 커녕 밀린 월급조차 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했던 한국에서의 자신들이 겪은 반인권적인 처우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며 절규하였다.
또 하나는 1994년 5월 졸속으로 실시된 산업연수생제도가 불과 7개월 만에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1995년 1월 9일부터 17일까지 사업체를 이탈한 열세명의 네팔인 산업연수생들이 명동성당 입구에 간이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였다. 그들은 ‘입국 후 6개월이 지나도록 연수수당을 전혀 받지 못했고, 송출업체를 통하여 본국으로 송금해 준다고 하였지만 송금되지 않았으며, 한국인 관리자들의 폭행, 폭언, 등을 견딜 수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산업연수생 제도를 개선할 것을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www.bmwh.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