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대외관계와 강역의 변동
- 최초 등록일
- 2009.12.17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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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고조선사의 인식체계와 대상
Ⅲ. 고조선의 중심 위치
Ⅳ. 고조선의 발전과 강역의 형성
1. 고조선의 발전단계
2. 先고조선왕국 시기의 강역
3. 고조선왕국 시기의 강역
Ⅴ.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과 강역의 변동
1. 대연(對燕)전쟁과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
2. 진의 동방 진출과 고조선의 후퇴
3. 조선의 요동수복과 대한(對漢)관계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머리말
민족 형성사에서 처음으로 부딪치는 문제가 단군(檀君)과 고조선(古朝鮮史)의 문제이다. 단군은 민족의 시조로 고조선은 민족사(民族史)의 원류(源流)로서 인식되었던 까닭에 역사학자나 일반인 모두의 높은 관심 속에 지속적으로 조명되어 왔다.
고조선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얼마나 큰 나라였는가?
고조선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는 일반인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숱한 의문점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고조선사에 대한 인식체계와 연구방법의 차이에 의해 백가쟁명의 견해가 표명되고 있다.
고조선의 정체성(正體姓) 문제 뿐 아니라 고조선사 연구의 기본이 되는 역사 지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논쟁을 거듭하고 있는 일자적인 원인은 물론 고조선에 관한 자료가 소략하고 고대 우리민족의 활동무대가 오늘의 우리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 중 양국문헌에 산견되는 고조선 사료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한 탓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Ⅱ. 고조선사의 인식체계와 대상
고조선사 연구는 일반적으로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체계로 포괄적으로 이해하거나, 위만조선 이전의 단군조선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고조선이 우리민족 상고사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세운 최초의 국가라고 한다면, 고조선은 형성부터 멸망시까지 동일한 성격을 지닌 국가 일 수는 없을 것으로 이를 모두 단군조선으로 이해 할 수는 없다.
더욱이 과거에 제시되었던 단군(檀君) ․ 기자(箕子) ․ 한씨(韓氏) ․ 예맥(濊貊) ․ 위만(衛滿)등은 사료적 의미를 지닐 뿐 고조선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사회적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는 아니다. 고조선은 세계의 유수한 고대 문명국가와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아사달(阿射澾)로 불리어진 초기국가로부터 출발하여 진 ․ 한(秦 ․ 漢)등 중원의 통일제국과 정면으로 맞섰던 ’대고조선왕국(大古朝鮮王國)‘ 시대로 발전한 생동하는 구체적인 실체이다.
참고 자료
-『고조선의 역사를 찾아서』. 고조선사연구회.동북아역사재단. 학연문화사. 2007
-고조선의 대외관계와 강역의 변동[동양학] . 129.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