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와 한국사 인물비교 2인자의 삶: 임표(林彪)와 이기붕
- 최초 등록일
- 2009.11.19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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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표와 이기붕을 비교조명한 레포트.
목차
■ 1인자를 만나기까지의 삶
■ 2인자로서의 출세
■ 2인자의 최후
■ 참고문헌
본문내용
■ 1인자를 만나기까지의 삶
임표(林彪)와 이기붕은 출생환경이 비슷했다. 두 사람 모두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비록 주변 환경은 어려웠지만 학업에 열중하였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임표가 자신의 능력으로 출세의 기초를 다진 데 비해, 이기붕의 경우에는 박마리아의 치맛바람과 이승만과의 사적친분, 절대복종으로 이승만의 곁에 있을 수 있었다. 다음에서 임표와 이기붕이 모택동과 이승만이라는 1인자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 임표
임표는 1907년 호북성 황강현에서 4명의 형제들 중에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임표가 어렸을 때에 조그마한 수공업적 직물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22년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망하자 호북 일대에는 경제혼란이 극심했고 특히 지방군벌들이 세금을 무겁게 책정하는 바람에 파산을 당해야만 했다. 임표 일가는 뒤이어 후이룽샨 근처로 이사를 했으며 임표는 이곳에서 초급학교에 들어갔다. 이렇게 볼 때 임표는 프롤레타리아 출신도 아니고 농민의 아들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의 희생계급이라고 할만 했다. 그리하여 임표의 부친은 기선회사의 사무장으로 일했지만 수입이 매우 적어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임표와 그의 형제들은 모두 어린나이에 돈벌이를 나가야 했고 임표도 학업을 병행하며 일을 해야만 했다.
임표는 14살 때인 1922년에 무창의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무창 학생사회에서 혁명운동은 주로 국민당의 혁명운동의 일환으로서 지방군벌에 대항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는 이러한 학생운동에도 열중하였다고 전해진다.
참고 자료
김승은, 「넘버투’의 상징, 이기붕」, 『내일을 여는 역사』, 31, 2008
서중석, 『한국현대사 60년 』, 역사비평사, 2007
아마코 사토시, 임상범,『중화인민공화국 50년사』, 일조각, 1999
양동안, 「공산권인물편력8:임표」 ,『북한』, 20,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