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정부와 기독교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09.05.11
- 최종 저작일
- 2007.04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로마정부와 기독교의 관계를 통해
초기기독교의 고난과 박해를 알아보는 레포트입니다
목차
Ⅰ로마정부 (들어가는 말)
Ⅱ 로마정부의 기독교 핍박
1) 정치적인 이유
2) 사회적인 요인
3) 종교적인 요인
4) 기독교인의 대한 편견과 오해
Ⅲ 로마 정부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
Ⅳ 기독교의 공인
Ⅴ 나가는 글
본문내용
Ⅰ로마정부 (들어가는 말)
로마는 B.C 8세기 무렵부터 A.D 1453년 비잔틴 제국의 멸망까지 적어도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위대한 제국이다. 그런 로마는 크게 B.C 8세기에 속한 전설적 왕정기와 B.C 510년부터는 공화정기로 그 이후 옥타비아누스 때는 제정기로 들어간다. 그러나 395년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어 서로마제국은 476년에 멸망하고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은 1453년까지 존속하게 된다. 로마가 이룩한 지중해 세계의 통일은 세계사상 불멸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로마, 우리는 이런 로마의 숨쉬고 있는 기독교적 사상과 기독교의 박해를 속에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고 지켜낸 믿음과 그 결과 생긴 믿음의 열매인 순교정신이 로마정부 어떠한 영향과 동시에 왜 기독교가 로마의 박해를 받았는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Ⅱ 로마정부의 기독교 핍박
1) 정치적인 이유
첫째, 계속된 유대인 반란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전승과 배타적인 유일신앙 때문에 항상 외국 정복자들을 혐오하고 그들에게 동화되기를 거부했으며, 아시리아 제국 시대 이래로 외국 지배자들에 대해 종종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B.C.2세기중엽 마카비 가가 셀레우코스 제국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켜 성공한 것처럼 이따금씩 반란에 성공함으로, 후대의 정복자들 치하에서 계속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제국의 확장 정책으로 인해 계속되는 전쟁은 군비부담을 가중시켰으며, 특히 속주의 경제적 사정은 너무도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 등에 항의 하며 반란과 소요가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정복자들 반란이나, 소요에 대해 강력하고 단호한 입장을 취함으로 유대인들은 너무도 큰 박해를 당해야만 했다.
둘째, 로마정부의 정책과 충돌이다. 로마정부는 외방종교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한 정책을 취했다. 사상의 자유도 어느 정도 보장되어 검열관이 웬만한 사상에 대하여는 손대지 않았고 교육도 스승과 제자 간에 간섭 없이 행해졌다. 군대도 제국을 방어하기 위하여 주로 변방에 배치되었다. 피정복민의 고래종교는 그것이 국가의 이익을 해하지 않는 한 인정되었다. 유대인들은 케자르때 이후로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었다. 로마정부 당국은 유대인들의 고유한 민족 종교를 인정하였으며, A.D.66~70년, A.D.132~135년간의 처참한 유대전쟁 후에도 유대인에게 주어진 옛 특권은 인정되었다.
참고 자료
(성광 문화사)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 이대섭
(웨스터 민스터 출판부) 새롭게 조명한 초대교회의 역사 J.포스터
(대한 기독교출판사) 초기 기독교와 사회 R.M 그랜트 = 김쾌상 옮김
(이레서원) 초대 기독교인들의 세계 Joseph J. kelly = 방성규 옮김
2003년 석사 학위 논문 로마제국의 초기 기독교 박해에 관한 연구
이한복
참고점
- 로마와 기독교인의 차이점 제시
- 왜 기독교의 문화가 로마인들에게는 무시당하고 핍박 받아야 하는가
- 기독교인들의 성결함, 거룩함
- 로마 시대의 문화적 타락성
- 로마의 사람들의 가치관과 문화
- 순교 후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제시
- 순교를 왜 할 수 밖에 없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