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 변혁기 - 세법변화
- 최초 등록일
- 2009.04.30
- 최종 저작일
- 2009.04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당의 균전제의 붕괴와 양세법의 시행. 이 후 송대의 지주전호제의 등장배경 등에 대해 간략히 다룸.
목차
1.당말의 시대배경
2.균전제의 붕괴
3.양세법의 시행
4.지주전호제
본문내용
1.당말의 시대배경
당 왕조는 현종(玄宗) 때 ‘개원의 치(開元之治)’라 하며 국력이 절정에 달했으며 전통문화도 집대성되어 외형적으로 화려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초기의 지배체제를 지탱해오던 율령제가 변질하였으며 조용조의 이완, 부병제의 붕괴 등을 이유로 자립 소농민 층이 와해되었다.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유민화 되었는데 이는 세원의 확충에 어려운 점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현종 치세 때 흔들리기 시작한 당왕조는 안․사의 난을 거치며 더욱 황폐해졌다. 전 국토는 장기간의 전란으로 황폐해졌으며 유랑민은 급증하였다. 회수이남의 양자강 하류는 전란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므로 제국의 재정은 강남지방에 의지하게 된다. 경제의 중심이 화북에서 화중지방으로 옮겨 간 것도 안사의 난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또한 중앙의 권력이 크게 약화된 반면 지방의 군벌 세력이 강성하였는데 반란군에서 당으로 귀순해온 유력 장수들이 강대한 군사력과 넓은 지역의 지방민중권을 장악하여 자립해나가게 된다. 또한 위구르, 토번, 남조 등이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게되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안사의 난으로 변방방비에 힘쓰지 못한 까닭이다.
하북지방의 절도사들이 힘을 길러 독립화 경향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전통적 귀족세력, 특히 산동귀족은 난을 겪으면서 큰 타격을 받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또한 백성들의 유망현상이 극심하여 정부의 호적이 현실과 크게 차이가 나게 되었다. 호적을 기초로 하여 조용조의 세금을 징수하기란 어려웠으며 결국 국가의 재원은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이에 대한 방책으로 정부는 낡은 조용조법을 버리고 양세법을 발표하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