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쌍화점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9.04.14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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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쌍화점>을 보고난 후 이와 관련된 역사적 자료들을 근거로 감상문을 작성한 글이다. 이 글을 읽고 난 후 영화를 감상한다면 각 장면들에 대한 이해와 함께 느껴지는 감동이 두배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목차
1. 영화 <쌍화점>의 시대적 상황
2. 공민왕의 정책
(1) 대외정책 : 배원정책
(2) 대내정책 : 개혁정책
3. 건륭위 홍림: 자제위(子弟衛) 김흥경(金興慶)
4.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 인덕왕후
5. 고려시대의 경기체가와 고려가요
(1) 가시리(고려가요) : 작자미상
(2) 쌍화점(雙花店)(고려가요) : 작자미상
6. 영화 <쌍화점>에 나타난 에로티시즘
<참고문헌>
본문내용
4.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 인덕왕후
공민왕은 노국 대장공주를 비롯하여 혜비 이씨, 정비 안씨, 신비 염씨, 반야 등 여섯 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그들 중 반야가 우왕을 낳았다. 영화 <쌍화점>에 나오는 왕비는 이중에서 노국대장공주 인덕왕후이다. 노국공주 인덕왕후는 원나라 종실 위안의 딸이며 본명은 보탑실리공주(寶塔實里公主)라고도 한다. 중국 원(元)나라의 황족인 위왕(魏王)의 딸로서, 1349년(충정왕 1)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결혼하여 1351년 12월 공민왕과 함께 귀국하였다. 그 후 공민왕은 그녀를 숙옹공주에 봉하고 숙옹부를 설치하였다.
그녀는 결혼한 지 8년이 될 때까지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들은 1359년에 후궁을 선택할 것을 건의하였고, 공주도 이에 동의하여 이제현의 딸을 궁중으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공주는 혜비 이씨에 대하여 심한 질투를 느껴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 이 때문에 궁녀들과 내관들이 그녀를 심하게 비방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어렵사리 임신하여 1365년 2월(공민왕 14)에 만삭의 몸이 되었고, 공민왕은 이를 기뻐하여 죄수들을 석방하는 특사를 내렸다. 그러나 난산(難産)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다.
공민왕은 그녀를 매우 사랑하였으므로 그녀의 영(靈)을 위로해 주기 위해 혼제(魂祭)를 지냈으며, 그 진영을 모시기 위해 장려한 영전(影殿)을 지었다. 공민왕에게 있어 그녀의 죽음은 엄청나게 괴로움을 안겨다 주었다. 공민왕은 슬픔에 잠겨 거의 정사(政事)를 뒷전으로 미룬 채, 3년 동안 육식을 하지 않았다. 또한 친히 왕비의 진영(眞影)을 그려 벽에 걸고 밤낮으로 바라보면서 울었다고 전해진다.
1365년 4월 대신들은 그녀에게 인덕공명자예선안왕태후라는 칭호를 올렸고, 이듬해 원나라에서 노국휘익대장공주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러나 이 시호는 곧 공민왕의 명에 따라 노국휘의대장공주로 고쳤다. 묘는 운암사 동쪽에 마련되었으며, 능호는 정릉이라 하였다.
참고 자료
1. 한겨레, <이코노닉21> 공민왕 말년 국정을 어지럽힌 간신: 김흥경, 아름다움, 2006.
2. 박영규 지음,『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 실록』, 들녘, 1997.
3. 박은봉 지음,『한권으로 보는 한국사 100장면』, 가람기획, 1995.
4. 안정애 외1 지음,『한권으로 보는 중국사 100장면』, 가람기획,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