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본격적인 권력투쟁이 시작된 것은 6·25전쟁 때부터였으며 6·25전쟁은 김일성이 정치적 적들을 물리치고 유일체제를 형성하는 첫 번째 길목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이는 연안파의 무장이었던 '무정'이 숙청되었고, 소련파의 대부인 '허가이'가 자살함으로써 박헌영과 남로당계열이 몰락하게 되었다. 이는 김일성의 권력투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정은 전쟁개시 이후 최초로 열린 1950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 3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으로부터 군벌주의자, 도피주의자, 살인자라는 비판을 받고 숙청되었다. 비판의 주된 원인은 인민군이 패주하는 과정에서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평양사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하였고, 후퇴과정에서 군율에 어긋나게 자의로 병사들을 사살했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무정으로서도 항변의 여지가 없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상황에서 무정에게 주어진 평양사수 명령은 그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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