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감은사터 발굴과 대왕암.
감은사는 문무대왕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의 뜻과 신문왕이 부왕의 은혜에 감사해서 지은 '효' 즉, 충효의 정신이 깃든 유적으로 광복 후 최초의 절터발굴로 기록된다.
1959년 그 성격을 알기위한 부분조사가 실시되고 난 후 20년이 지나 1979-1980년에 걸쳐 전면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굴 결과 감은사 건물 배치의 특징이 나타났는데 첫째, 중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높은 계단을 오르도록 되어있는 것과 둘째, 법당의 기둥아래 전체에 용혈의 흔적으로 보이는 특수 공간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한편, 석탑의 해체 작업에서 김정기 문화재위원이 광복후 우리 손으로 처음으로 신라시대의 사리공을 찾아냈지만 전설로 전해지는 감은사 대종은 어려운 수중발굴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했다.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