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유럽 현대사
- 최초 등록일
- 2001.11.08
- 최종 저작일
- 2001.11
- 3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차대전
1. 국제적 긴장의 격화
2. 1차대전의 발발과 경과
3. 1차대전의 성격
4. 1차대전후 국제질서 변화
5. 베르사이유 체제
[전쟁책임 문제]
[집단책임론]
[각국의 이해관계]
Ⅱ. 각국의 공황 타개책
제2차 세계대전
Ⅰ. 국제관계의 긴장
Ⅱ. 전쟁의 진행
Ⅲ. 결 어
[스페인 내란]
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
Ⅱ. 전시외교와 얄타체제의 성립
본문내용
1. 국제적 긴장의 격화
유럽의 국제적인 긴장을 격화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비스마르크 실각후의 독일의 적극적인 세계정책의 추진과 이를 위한 군비확장이었다. 독일은 비스마르크시대에 있어서도 열강의 뒤를 따라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그리고 중국 등으로 진출하였으나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열강의 세계분할에 한 몫보자는 것이지 열강의 어느 특정 세력권이나 이권에 대한 도전은 아니었다. 1900년경 열강의 세계분할이 거의 완료되었을 때까지 독일은 계속 강력하게 세계정책을 추구하고 기존 세력꿘이나 이권을 무시하면서 파고들었다.
독일 황제 빌헬름은 세계분할이 거의 끝날 무렵 터키 경영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직접 그곳을 방문하는 등(1898)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여 Byzantium과 Bagdad간의 철도 부설권을 따내고 이를 Berlin과 연결하는, 이른 바 3B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려 하였다. 이러한 독일의 세계정책의 기본방향은 영국의 Cape식민지와 Cairo, 그리고 인도의 Calcutta를 연결하는 3C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러시아의 터키 및 지중해로의 진출정책과도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었다. 유럽의 국제적 불안을 세계대전으로까지 몰고 간 중요한 기본적인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고, 장기간에 걸쳐 대립을 거듭해 오던 영국과 러시아가 서둘러 타협을 모색하고 협상을 맺은 주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아프리카의 남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모로코에는 프랑스의 세력이 침투하고 있었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아직 완전히 그 지배하에 들어가지는 않고 있었다. 프랑스는 영불협상을 통하여 이곳에서의 우월한 지위와 영국의 지원을 약속받고 있었는데 바로 그 협상이 맺어진 다음해(1905) 독일 황제 빌헬름은 돌연 모로코의 Tangier항에 상륙하여 모로코의 영토보전과 문호개방을 주장하였다(1차 모로코사건).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