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도
- 최초 등록일
- 2001.10.06
- 최종 저작일
- 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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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다도란 무엇인가??
차의 기원
다도의 역사
다도의 정신
다도와다례비교
외국의 다도
동양 삼국의 다도역사
우리나라 시대별로 본 다도의 정의
1 신라시대
2 고려시대
3 조선시대
한일 다도문화의 특징
차와 생활
차 맛과 효능
--- 다도 (茶道 さどう) ---
다도 시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다도 문화에는 중국의 다도 문화를 모방한 문화(다법, 다구, 차의 이름짓기, 다 달이기의 솜씨 겨루기, 물전하기의 풍습이 있다.)를 비롯하여, 중국의 다도문화를 한반도의 여건에 알맞도록 재구성한 문화(차를 달일 물의 등급을 매긴 일과 차의 공덕을 읊은 노래 등이 있다.)와 ,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독창적인 고유문화(화랑의 다구, 고려 청자의 찻사발, 다선 삼매의 선창, 다신계 접목)가 있다.
반면 일본다도의 특징은 남성들의 문화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장군인 아시카가 요기미스는 하나노고쇼(꽃의 궁궐)라는 저택을 짓고 그 한구석에 '회소'라는 건물을 지었다.
이 회소에 다다미를 깔고 '도코노마(일본식 방의 상좌에 바닥을 높게 만든 곳)를 설치했다. 이 회소에 권력있는 무장과 재력있는 상인이 모여앉아 차를 마시는 일이 종종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교적인 여흥이나 취미로 시작되었지만 차츰 무장이 상인에게 협력을 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특히 근세 초기에는 차를 마시는 모임, 즉 다회에서 무장과 상인이라는 두 계급의 협력관계가 이루어지는 일이 많았다. 1587년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안의 다회에 상인 가이야를 초대하여 특별히 대우했던것도 규슈연안의 통상과 운수에 정통하여 해상권을 쥐고 잇던 가이야와 친분을 갖기 위해서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