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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鴻章, 伊藤博文과 19세기말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

저작시기 2009.03 |등록일 2009.09.15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4페이지 | 가격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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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동학학회 수록지정보 : 동학연구 / 26권
저자명 : 강문호

목차

한글 논문개요
중문 논문개요
Ⅰ. 머리말
Ⅱ. ‘天津條約’과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동요
Ⅲ. ‘馬關條約’과 동아시아 전통질서의 와해
Ⅳ. 北京會見과 중ㆍ일의 지위 역전
Ⅴ. 맺음말

한국어 초록

이홍장과 이등박문은 19세기말 동아시아 국제질서 재편과정에서 淸ㆍ日 양국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이들 두 사람은 평생 세 차례 만나 청ㆍ일 양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명운을 결정짓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그 첫 번째 만남은 1885년 4월, 갑신정변 사후처리를 위한 天津회담이었으며, 두 번째는 청일전쟁 사후처리를 위해 일본 마관에서 열렸던 회담이다. 그리고 마지막 회견은 청일전쟁 후 이홍장이 중국을 여행 중이던 이등박문을 초청하면서 이뤄졌다. 이홍장과 이등박문 두 사람의 첫 번째 만남, 즉 천진회담은 중ㆍ일 양국의 조선에서의 지위가 대등함을 인정하는 자리였다. 전통적으로 종주국과 藩屬國으로 인식되었던 中ㆍ韓관계에 변화가 나타났던 것이다. 청일전쟁 사후처리를 위해 마주앉았던 이홍장과 이등박문의 두 번째 만남에서는 淸ㆍ朝 양국의 전통적 宗ㆍ藩관계를 폐절한다는 것을 문서로 확정함으로써 전통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와해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들의 세 번째 만남은 청일전쟁 패배 후 부국강병을 위한 變法 필요성이 고조되면서 유신파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일본을 스승삼아 개혁을 진행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됨으로써 전통시대의 중국 중심 동아시아 천하질서가 일본 중심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홍장과 이등박문의 세 차례에 걸친 만남은 한ㆍ중ㆍ일 삼국의 관계를 중국 중심에서 일본 중심으로 바꾸는 과정을 결과하였던 것이다.

영어 초록

李鴻章和伊藤博文, 是於19世紀末葉重編東亞細亞國際秩序之時代表淸ㆍ日兩國的人物. 這兩位歷史人物在他們的生平會見三次, 進而決定19世紀末葉東亞細亞的命運. 他們的第一次會見實現於1885年4月在天津, 會見的目的在於討論甲申政變的事後問題. 第二次會見成於日本馬關, 會見的目的是在於決定有關淸日戰爭的許多問題. 他們的最後會見是在淸日戰爭結束後李鴻章請旅遊中國的伊藤博文而成立的. 李鴻章和伊藤博文的第一次會見, 也卽天津會談是淸朝承認淸ㆍ日兩國在朝鮮的權力是平等的會談. 到那時爲止, 一般認爲, 淸朝和朝鮮的關係是宗主國和藩屬國關係, 而經過李鴻章和伊藤博文的第一次會見, 這種關係發生變化的. 爲了討論淸日戰爭的事後問題而會見的馬關會談, 是用文件來正式廢除淸ㆍ朝兩國間宗ㆍ藩關係的會談, 這就意味着東亞細亞傳統國際秩序的瓦解. 李鴻章和伊藤博文的第三次會見, 也卽北京會見是確認傳統時代的以中國爲中心的東亞細亞天下秩序已變爲以日本爲中心的體制.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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