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의 자주외교전략: 유럽 사례를 통해 본 가능성과 한계

저작시기 1998.01 |등록일 2009.04.22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53페이지 | 가격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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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수록지정보 : 전략논총 / 9권
저자명 : 하용출, 박정원

목차





Ⅰ. 서론

Ⅱ. 약소국과 국제체제

Ⅲ. 약소국의 외교전략: 유럽의 사례

Ⅳ. 한국 외교전략에 대한 함의

Ⅴ. 결론

참고문헌

한국어 초록

본 연구는 대체로 성공적으로 평가되는 약소국들의 자주적 외교전략 사례를 검토함으로써 한국의 외교전략 수립에 참고가 될 요소들을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의 연구대상 국가들은 자주적 외교를 전개해 온 유럽의 약소국들이다. 이들 국가들이 선택된 이유는 이들이 안보논리, 경제논리의 통합과 분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약소국들은 냉전기 동안 양블럭의 한 진영에 속하거나 어느 편에도 소속하지 않는 대외정책을 전개해 왔다. 진영소속 국가의 경우 대체로 그 자율성이 제약을 받기 마련이며, 특히 소비에트블럭 약소국들의 경우 일부가가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소련의 위성국 기능을 수행한 점이 적지 않았다. 한편, 냉전국제체제에서 비정치적 성격의 국제기구까지 블럭의 대립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블럭의 멤버가 아닌 국가의 경우, 한 진영의 멤버들로 구성된 일개기구에 가입하는 것은 곧 그 진영과의 긴밀한 유대를 의미할 뿐 아니라, 동서대립 가운데 어느 일방에 소속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럽의 비블럭국가들 외교전략에서 흥미로운 사례들을 발견케 된다. 즉 유럽약소국의 사례를 안보와 경제를 목적으로 하는 서방국제제도-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공동체(EC)-에의 참여여부에 맞추어 5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러한 유형분류를 고려하여 본 연구는 각국 전략의 공통점과 치이점, 상이한 전략을 택한 이유, 각국의 전략에 대한 평가, 이들 사례들의 전략선택과 변경이 한국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합의의 순서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다자동맹인 NATO에 가입함으로써 안보를 확보하고, EC에 가입하여 서유럽의 경제통합에 동참한 베네룩스3국이 유형1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 유형은 안보논리와 경제논리의 통합에 관한 좋은 사례가 된다. 이들은 모두 2차대전에서 중립 유지에 실패한 경험을 가진 국가들로서, 1949년 NATO창설이래 회원국이며, 유렵공동체의 창설멤버이기도 하다. 이들은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안보 및 경제통합 모두에서 적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벨기에의 경우 제1차대전시 강대국에 의해 보장되는 중립에 의존했다가 독일의 침공을 경험하였고, 이 때문에 1차대전 이후 강대국과 동맹을 추진하여 프랑스와 동맹관계에 들었으나 동맹국에 대한 신뢰의 상실로 폐기되었으며, 이후 다시 복귀된 중립이 2차대전 기간 독일에 의해 침해되는 등, 안보와 관련해 수 차례에 걸친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다자동맹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2차대전후 냉전격화가 분명해지자마자 서방안보체제 가입의사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들이 EC에서도 적극적이었던 이유 가운데는 경제통합화를 통해 독일의 재강화를 공동통제하고자 하는 안보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유형2의 노르웨이 외교전략 특성은 냉전체제에서 서방의 안보기구에는 참여하나 경제통합기구에는 불참하고, 비블럭국가들의 경제협력기구인 유럽자유무여지대(EFTA)에만 가입하였다는 점이다. 노르웨이가 안보에서 NATO에 의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립정책의 실패경험 때문이다. 2차대전시 독일의 침공으로 노르웨이의 중립은 실패하였는데, 중립실패요인으로 중립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스웨덴과 달리 자위능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NATO가입과 거의 동시에 진행된 북구방위조약(Nordic Defence Pact) 또는 스칸디나비아방위조약(Scandinavian Defense Pact)에 임하는 노르웨이의 태도에서도 중립실패의 경험이 잘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NATO 멤버십에 대한 국민 지지는 확고하다.

노르웨이가 NATO에 안보를 의존하지만 자주적 외교를 포기한 것은 아니며,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소련을 의식하는 신중한 외교를 전개한다. 노르웨이는 NATO에 가입해 있으면서도 가급적 소련을 자극하지 않고, 소련과의 대결로 이끌 수 있는 사건들을 회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노르웨이가 소위 "base-ban"정책으로 알려진 두 가지 기본원칙을 준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노르웨이는 안보를 NATO에 의존하면서도 EC가입은 자제해 왔으며, 냉전종식 이후에도 이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 노르웨이가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을 실질적으로 분리시킨 이러한 독특한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주권양도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나 자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 및 이것이 외부 영향에 의해 변질되는 것에 대한 반감등도 작용하였으나 EC가입이 초래할 노르웨이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중요하였다. 농업과 어업에 대한 국가보호는 바로 경제안보를 위한 것이기도 하며, EC 가입은 이러한 권리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노르웨이는 여전히 안보이익은 NATO를 통해 확보하면서도 경제이익은 EC 밖에서 찾음으로써 안보와 경제의 분리와 최적화를 추구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유형3에 해당되는 아일랜드는 냉전국제체제에서 EC 회원국 가운데 NATO회원국이 아닌 유일한 국가였다. 아일랜드는 경제적으로 1973년부터 EC회원이며, 정치적으로 서방진영에 속하고 있지만, 군사적으로는 중립을 내세우고 있다. 아일랜드가 "EC에 가입한 중립"이라는 독특한 외교전략을 선택하고 유지한 이유는 영국과의 역사적 특수관계에서 출발한다. 아일랜드는 공화국으로의 독립이 선언되기 전인 1930년대부터 안보정책으로서 중립을 내세웠는데 당시의 중립선언은 영국의 안보비용 분담요구를 거절하는 명분으로서도 기능하였다. 중립노선의 다른 중요한 요인은 북아일랜드 문제였다. 아일랜드는 1949년 NATO창설시 가입을 제의 받았으나, 아일랜드 분단에 책임이 있고 통일을 방해하는 국가를 포함하는 국제기구에는 가입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여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것에 국한되지 않고 NATO가입이 초래할 외교에서의 자주성약화 위험이나 안보비용 부담도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음이 틀림없다.

낮은 차원의 국방태세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중립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지정학적 위치가 크게 작용하였다. 아일랜드는 냉전기의 동서대립 무대에서 일정 거리에 떨어져 있었고, 초강대국들도 아일랜드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 상대적 무관심을 보여 일종의 지정학적 고립(geostrategic isolation)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일랜드의 중립은 약소국 외교정책에서 경제가 갖는 중요성을 잘 증명해 주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지역경제협력 기구에 가담하면서도 정치적 자율성을 유지하는 외교전략의 예가 되고 있다. 이는 안보위헙이 덜하다는 안보환경의 잇점을 잘 이용하여 경제논리를 우선시 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를 통해 아일랜드는 EC회원 지위로부터 경제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안보환경과 조건에 수반되는 잇점을 이용하여, 안보기구 가입에서 초래될 비용부담을 회피하는 중립을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스웨덴의 중립역사는 나폴레옹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815년 이후 어떠한 전쟁에도 연루되지 않았고 이미 중립은 국민적 전통의 하나가 되었다. 2차대전 중 노르웨이, 핀란드와 달리 스웨덴이 중립 유지에 성공한 비결은 강력한 군사력 보유와 독일을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신중외교에 힘입은 바 크다. 무장중립을 유지하기 위한 스웨덴의 안보정책은 흔히 총력방위(total defense)로 알려진 것으로, 대개 총력방위는 정규군, 민방위, 자립경제, 방위산업 등의 요소로 구성된다. 약소국 스웨덴이 자위가 가능하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동서대립 상황에서 초강대국이 스웨덴을 전력 공격할 수는 없고 "제한적 공격"(marginal attact)만을 수행할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으로 이 제한적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자위력 보유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외에도 경제봉쇄를 극복할 수 있는 자급자족능력은 경제안보를 위한 것이다.

스웨덴의 단호한 중립결의는 냉전기 동안 EC가입을 어렵게 하였다. EC와 같은 비군사적 통합기구도 기본적으로 구성국, 체제, 목표 등에서 블럭으로 나누어지는 냉전체제에서는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본격적인 EC 가입추진이 가능했던 것은 소련진영의 붕괴라는 국제정치적 격변 이후였다. 스웨덴의 EC 가입신청 배경에는 가입을 요하는 경제사정이 작용하였으나, 무엇보다도 안보환경의 변화를 꼽을 수밖에 없다. 1989년 이후 소련진영의 붕괴로 초래된 탈냉전 국제정세에서는 중립의 중요성이 많이 퇴색하였고 특히 1990년 독일 통일에 대한 소련의 동의는 스웨덴의 태도변화를 가능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여론도 가입지지가 더 우세해졌던 것이다.

이처럼 무장중립과 총력방위가 스웨덴의 중립유지에 기여하였고 자주성과 국제적 지위를 보장해 왔지만, 안보정책의 딜레머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강한 군사적 억지력은 막대한 국방예산을 필요로 하는 반면, 스웨덴과 동일시되다시피 한 복지국가 유지를 위해서는 정부예산의 7%에 이르는 방위예산의 동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총력방위의 어려움은 방위산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뢰성있는 중립을 위해 블럭 일방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방위산업을 육성해온 스웨덴이지만 첨단기술에 있어서는 강대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스웨덴식 중립의 고수여부가 앞으로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핀란드 외교전략은 소련과의 유대와 중립고수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핀란드가 독특한 중립 전략을 유지한 배경으로 지정학적 요인과 역사경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역사적 경험 때문에 핀란드는 소련을 의식한 대외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중립마저도 친소련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 때문에 서방 학자들 가운데 핀란드 중립을 회의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고, 소위 "핀란드화"(Finlandization)의 위험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1948년 4월의 핀소 우호협력원조(Friendship, Cooperation and Mutual Assistance;FCMA)조약은 일종의 준동맹으로서 전시에 소련이 핀란드를 자기 편에 서도록 압력을 행사할 근거가 될 수 있으며, 핀란드의 국방, 외교정책은 이 틀내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중립이 갖는 의의를 경시할 수는 없다. 핀란드처럼 일 강대국의 압도적 영향에 직면하여 강대국간 균형을 취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약소국의 경우, 대외분야에서의 부분적 추종을 대가로 독립을 유지하고 상이한 체제를 유지하는 긍정적 전략으로서 친소련적 중립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핀란드의 중립이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점에서이다. 외교정책 문제에서 소련과 협의하고, 핀란드의 선의에 대한 소련의 신뢰를 증진시키며, 소련의 잠재적 적국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지원도 자제하는 Paasikivi-Kekkonen노선은 핀란드형 중립을 상징한다.

핀란드 중립 고수는 자연히 EC가입을 배제하였다. 1989년까지 핀란드는 EC가입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물론 중립고수 의지와 소련과의 선린관계 때문이었다. 따라서 1990년 10월 스웨덴이 가입을 신청하기로 결정한 이후 핀란드의 가입가능성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소련의 군부쿠데타가 실패한 1991년 8월 이후 긍정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하였다.

핀란드는 어려운 지정학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유지하였고 소련의 압도적 영향력행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핀란드 사례는 약소국과 강대국 관계의 성공적 패러다임(Paradigm)으로 언급되기도 하며, 체제를 달리하는 사회주의 강대국과 자본주의 약소국간 건설적 협력관계를 잘 보여주었다. 핀란드의 EU가입도 스웨덴처럼 안보환경 변화에 따른 경제논리의 추종을 보여준 것으로 EU내 중립유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도 냉전체제에서는 스웨덴, 핀란드처럼 안보와 경제논리를 통합하여 NATO와 EC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는 외교전략을 채택하였다.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정책적 중립이 아니라 국제법적으로 보장되는 중립이다. 오스트리아가 패전국으로서 4대전승국에 의해 분할점령되었으면서도 중립화통일에 성공한 것은 지정학적 요인과 대내의 정세가 맞물렸기 때문인데, 서독, 이탈리아 등 NATO 국가와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바르샤바조약기구와 접경하여 동서대립의 교차지점에 위한 오스트리아는 2차대전 이후 지정학적 가치가 격상되었고 일종의 완충국가 기능을 하게 되어 중립에 유리하였다. 또한 1955년 당시의 후루시초프 평화공존정책에 힘입은 바도 크다. 물론 국내적으로는, 해방후 극단적 좌우대립으로 좌우합작에 실패한 한국의 경우와 대조적으로, 국민당과 사회당의 대연정에서 보듯 정치엘리트들이 단결된 의지를 보였던 점도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이다.

오스트리아의 경우도 다른 중립국가들처럼 동서냉전체제에서 진영간 가교역할에 적극적이었고, 소련을 의식한 신중 외교를 전개하였다. 중립지위에 충실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는 서방 뿐 아니라 소련, 동구와도 활발한 교역을 전개하였고 Council of Europe, OECD, EFTA 등에 가입하면서도 EC가입은 냉전종식시까지 보류하였다. 오스트리아는 동서간 대립이 완화되고 있던 시점인 1989년 7월에 EC가입을 신청하였다. 이 신청서에서는 1955년 연방헌법에서 규정한 영세중립 지위를 계속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유형5의 스위스는 국제적으로 보장되는 중립체제이지만, 적극적 중립정책 그리고 무장중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자국의 군사력, 경제력만으로 독립을 유지하는 데 무리가 없지 않지만, 스위스의 경우 방위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었고, 만일 중립이 실패하여 침략을 받을 시에는 자위력을 동원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 스위스는 연방정부의 국방비지출 외에 Canton과 사적부문의 지출을 포함하면 GNP의 3.6% 정도가 국방에 지출되고 있으며, 외국 라이센스로 중무기를 생산하는 등 방위산업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민방위와 경제적 자급체제, 방위산업 등을 갖추고 있어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국방정책은 총력방위로 특징된다. 영세중립이면서도 자위능력에서 상당 수준의 자위능력을 보유하였다는 점에서 스위스 중립을 핀란드와 오스트리아와는 달리 스웨덴과 함께 자국방위력에 기초한 중립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의스의 경우는 중립국들과 달리, EC가입이 중립원칙의 위배여부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고 연방주의와 직접민주주의 전통에도 위협적 요소로서 인식되었다. 따라서 다른 중립국들보다 EC가입에 보다 소극적이었고, 자주외교 유지에 더 적극적임을 알 수 있다.

중립 전략을 택했던 유럽약소국 가운데 현재 스위스만이 EU에 불가입한 상태에 있다. 물론 양극체제의 붕괴와 독일통일을 가져온 탈냉전기에 스의스의 중립과 안보는 계속된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대체로 스위스 정치권이 중립과 유럽통합에의 참여가 상호모순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고, 중립을 견지하면서도 EU에 가입한 "유형4" 국가들의 예를 볼 때, 스위스의 전략변화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하겠다. 냉전기 유렵 약소국들의 전략선택이 이상과 같은 여러 유형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첫째, 전략지정학적 위치(geo-strategic position), 둘째, 과거 중립정책의 성공과 실패 경험, 셋째, 경제이익에 대한 고려 등의 작용하였다. 탈냉전기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럽약소국들은 전략의 수정을 보여 주었는데, 1995년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3국의 EU가입은 안보위협이 줄어들자 경제적 이익의 고려가 우선시되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일국의 안보환경이 개선될수록 외교전략에서 안보논리보다 경제논리가 우선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증명한다고 하겠다. 동시에 소련이라는 veto power를 의식했던 전략의 부분적 수정이기도 한다.

자주외교전략을 성공적으로 유지해온 유렵 약소국 사례는 한국의 외교전략 수립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일 강대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의 탈피 필요성이다. 한국이 처한 전략환경의 특수성에 의해 19세기말 이래 겪어온 역사적 경험-강대국의 세력쟁탈전 무대, 식민지배, 분단, 한국전쟁 등-으로 한국민에게도 한보에 대한 "심리적 불안"(psychlogy of insecurity)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주적 외교를 위해서는 아일랜드처럼 다변화(diversified)된 외교관계 수립으로 종속탈피를 시도하거나, 압도적인 일 강대국의 영향하에 있어 다변화를 가능케 할 대안을 발견키 어려울 경우 필란드처럼 "일변도적 중립"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에 대한 균형력으로 작용할 강대세력이 주변에 존재한다는 점은 오히려 약소국의 균형자 역할에 유리할 수도 있다. 유럽 약소국들의 사례에서 볼 때 중립의 가치는 강대국간 또는 진영간 대립에서 블럭불가담 약소국 역할이 블럭가담 국가보다 중재역이나 강대국에 대한 조정능력에서 더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립은 아니더라도 강대국간 이해대립의 완화를 가능케 할 정도의 조정능력 또는 중재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외교, 안보, 경제의 일변도전략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둘째, 현실적이거나 잠재적인 veto power의 반대를 중립화(neutralize)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노르웨이는 안보를 위해 일방의 안보동맹에 가입하여도 인접 강대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신중외교를 전개하였고 다른 중립국들도 이해관계를 가진 강대국을 소외시키지 않도록 노력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이나 궁극적 한반도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veto power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엣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문제에 관하여 우호적 중립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외교전략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서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줄어들었으나, 북한에 대한 지지를 조건으로 남북관계에서 언제든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므로 러시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셋째, 유럽의 중립국들은 모두 평시중립 원칙고수를 중요하게 인식하였는데, 이는 강대국간 또는 양진영간 대립과 경쟁의 한 가운데 위치한 국가의 중립 성공을 결정할 두 요소는 신뢰성과 타국의 존중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점에서 평시 주변강대국의 신뢰성을 얻는 외교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넷째, 군사적, 경제적 자급자족(autarky)의 필요성이다. 오늘날과 같은 상호의존의 시대에 완전한 자급자족은 불가능하지만, 자주전략을 위한 최소한의 자급자족 능력을 경시할 수는 없다. 아일랜드를 제외하고 대부분 국가들이 전략적 및 경제적 autarky를 유지하였고,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했었던 점을 통해 그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다섯째, 전략수립에서 엘리트 차원 뿐 아니라 일반국민 차원에서의 지지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렵 약소국들은 자국전략에 대해 리더십과 여론 모두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여섯째, 안보환경 변화를 고려하는 전략의 유연성이다. 양극체제의 붕괴와 탈냉전을 맞아 세계적 차원에서 안보환경은 과거보다 유리해지고 중국의 개방, 한-중교류 확대, 러시아로부터의 위협감소 등 동아시아 지역적 차원에서도 안보환경은 개선되었다. 1995년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의 EU가입 경우에서 보듯, 국제환경 변화에 따라 전략 수정이 요구된다. EU에 가입하면서도 정치적, 안보적 중립을 고수하는 태도는 국가이익 최적화를 가능케 하는 방향으로 안보와 경제를 분리 및 통합시키는 전략의 모범이 된다. 안보와 경제의 분리냐 통합이냐하는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른 유연한 전략선택의 필요성을 배울 수 있다.

영어 초록

Paul Kennedy has pointed out, in his book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that there cannot be a universal rule concerning the short-term military security and the long-term economic security. This remark well shows the difficulty to harmonize security logic and economic logic in every country's foreign policy. As for a middle or a small power, the difficulty is much bigger than that of great powers. However, we can find in the foreign policies of small Western European states that security logic and economic logic are not always in contradiction, and that a flexible adaptation is possible in parallel with the changes in security environment.

During the Cold War period, small Western European countries had shown an interestiong typology concerning the participation into the two Western international organizations pursuing military and economic aims respectively : Benelux taking part in both NATO and EC (Type 1) ; Norway participating in NATO but not in EC (Type 2) ; Ireland which is a member of EC but sticks to the principle of neutrality (Type 3) ; Switzerland, Sweden, Finland, and Austria that took part in neither NATO nor EC during the Cold War period (Type 4). Among the Type 4 countries, three except switzerland changed their past strategy and became new members of European Union in 1995 keeping pace with the changed security environment in the post-Cold War era (Type 5). This typology of strategy resulted from the differences in each country's geo-strategic position, experience of success or failure of their past neutral policies, and each state's economic considerations.

South Korea as a small or a middle power can learn several lessons from the Western European cases in the making of her foreign strategy. First, it is necessary to change the existing lean-to-one-side policy. South Koreans' historical experience related with the particularity of the Korean peninsula's strategic environment may justify the pro-American foreign policy, but the fact that lack of independence has characterized South Korean foreign policy cannot be denied. Second, a careful and deliberate strategy that can neutralize the objection of an actual or potential veto power such as China and Russia is necessary. These countries may put their veto on the future re-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 Third, the need to maintain the minimum level of autarky is still undeniable even in the period of global inter-dependence. Fourth, South Korea needs to pursue a diplomatic strategy that secures peace-time credibility from her surrounding four great powers such as the United States, Japan, China, and Russia. Fifth, in making strategy, support from both the leadership and the public is indispensable. Sixth, it is necessary to make a self-supportive foreign strategy that can flexibly integrate and separate economic logic and security logic,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changed security environment in the post-Cold War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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